얼마 전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던 책 중에 <화내지 않는 연습>이 있었다. 습관적으로 베스트 셀러를 멀리하는 탓에 구매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들녀석과 서점에 들렀을 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훑어보기는 했었다. 대개의 자기계발서가 그렇지만 씌어진 내용 대로 한다면 독자는 그 누구라도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릴 것처럼 보였다. 이런 류의 자기 계발서는 책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IQ가 30인 사람도 따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야만 베스트 셀러 목록에 들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간과하는 것은 아무리 쉬운 일도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따라할 수 있지만 팥죽 끓듯 변덕스러운 인간이 일주일 이상을 지속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의 천성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 유혹에 빠질 리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반골 기질이 강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그때는 비록 숫기도 없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 했던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였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나를 다루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으리란 짐작이 들곤 한다. 고집불통에 반항적인 것은 다반사요, 한번 '아니다' 싶으면 단호하고 완강하여 쇠심줄처럼 끈질기고, 자유분방한 사고에 읽은 책은 많아 어른들도 꼼짝 못하게 하는 대거리질 등... 한마디로 수굿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별난 아이였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가끔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말해주곤 한다.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떠벌리느냐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특별히 잘못한 일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지치고 피곤한 탓에 쉽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곤 한다. 원하는 것은 많은데 가난한 집안 형편으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내 어릴 적 환경에 비해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다. 하기에 그들 내면에 쌓였을 불평과 불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하겠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어떤 대상에게 화가 나거나 불만이 있으면 욕을 해도 된다.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심한 욕도 상관없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나의 불평 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심한 불평이나 욕은 전염력이 강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하게 되면 은연중에 다른 사람도 내 생각과 같아지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으므로 가급적 혼자 있는 자리에서 하라는 것이다. 그 대상이 나랏님이든 하느님이든 또는 부처님이든 너희를 가르치는 나든 마음 내키는 대로 욕해도 된다.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들어주는 것이 없으면 큰 소리로 불평을 토로해라. 국가에서 나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나랏님도 마음껏 욕해라."
다스리기 편하다는 이유로 순종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죄악이다. 산에 올라 어떤 대상을 향해 내키는 대로 욕을 하다 보면 속이 후련한 것도 그러려니와 종국에는 혼자 떠드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 헛웃음이 나오곤 한다. 역설적이게도 나 혼자 하는 욕은 욕을 많이 할수록 미워하는 대상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돈 들이지 않고 스트레스를 깨끗이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세상에 대해 불평을 맘껏 토하라. 그보다 유익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