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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세뇌 - 당신이 의존하는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법
이소무라 다케시 지음, 이인애 옮김 / 더숲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대다수의 흡연자라면 식사 후의 나른한 포만감과 함께 찾아 오는 담배 한 개피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식당이 금연으로 지정되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식 자리에서의 흡연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였고, 흡연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기만 한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말할 것도 없고 오픈된 공간인 공원에서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는 가볍지 않은 벌금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비흡연자라면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지만 흡연자들에게는 낙원과 같았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볼 때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편이나 지탄의 눈총에도 흡연을 고집하는 데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흡연자이니 흡연자를 비호하거나 변명을 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끊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흡연자의 고충도 비흡연자가 알았으면 한다.
나라고 금연을 결심하거나 실천하려고 단 한번도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약국에서 근무할 때 가져다 준 금연 패치도 붙여 보았고, 한방병원에서 금연침도 맞아보았으나 백방이 무효했다. 결국 나는 담배의 끈질긴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담배의 향이나 연기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마 없지 싶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이 담배의 트릭이란다. 담배를 처음 피우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구토나 어지럼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언제든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것이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나도 그랬다. 그것이 속임수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나는 담배를 좋아하기는커녕 지극히 혐오했었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은 열차 안에서건, 버스 안에서건 구애받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유난히 멀미가 심했던 나는 열차나 버스를 탈 때는 으레 옆좌석에 앉은 사람의 인상을 살피곤 했다. 담배에 찌든 중년의 남성이 옆에 앉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 앉았고, 담배 연기로부터 안전한 다른 자리가 없으면 내내 서서 가기도 했었다.
이 책은 담배를 비롯한 알코올, 다이어트, 인터넷게임, 섹스, 일 중독, 사이비종교 등으로 세뇌된 마음을 분석하고 이러한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해 씌여진 것이지만 본인의 의지와 실천을 강조하는 기존의 책들과는 구별된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에서 "생각의 오류"라는 제목으로 중독에 대해 짧게 썼었다. 그 때의 글을 옮겨보면 이렇다. " 중독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중독이 좋아하는 대상으로 끌리는 현상이라 이해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때 나는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갖고 쓴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의 내용과 일견 상통하는 면이 있어 옮겨본 것이다. 저자는 의존증에 대한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깨닫는 것만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직접적인 공포와 얼마간의 쾌락이 이어지는 보상의 이중구조, 그리고 변성의식 상태에 따른 정신적 영향이야말로 세뇌나 의존증에 지배당하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이중세뇌’구조다." (P.93)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질까? 답은 ’아니요’다. 요컨대 ’본래 인간에게는 담배에 대한 욕구가 없다’라는 얘기다. 욕구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담배 때문에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즉 담배에 대한 욕구란 담배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P.87)
담배를 피움으로써 얻는 도파민이나 알파(α)파는 이것들을 생성하는 신체의 신경을 마비시켜 신체적 의존과 심리적 의존을 가중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담배를 끊으면 신경이 서서히 회복되어 α파가 증가하고 도파민도 늘어난다. 그러면 행복을 느끼기 쉬워지며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힘이 회복되며, 결과적으로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담배를 끊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의존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하에 의존증에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를 정확히 인지함으로써 의존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결심과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이른바 ’깨달음의 치료’인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흡연자, 더 나아가서 모든 의존증 환자라면 꼭 읽어야할 좋은 책이다.
이제는 정말 금연을 실천할 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