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과 딱 들어맞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 발행되는 책의 권수로만 따져도 1억권이 넘으니 그 많은 책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책을 고른다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그동안 꾸준히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정리가 되지 않았던, 안개에 묻혀 희미한 의식으로만 살아있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에 더하여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게 <블랙 스완>은 그런 책이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발하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전업 투자자로 살았었다.  운이 좋았는지 나는 많지 않은 투자 원금에서 발생하는 수익만으로도 생활비와 저축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이 흘렀고,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거래를 마치고 다음날 거래할 종목의 챠트 분석까지 끝낸 후 동료들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습관처럼 TV를 켰다.

그때 화면에서 속보로 전해지던 쌍둥이 빌딩의 폭파 장면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내가 샀던 종목의 주가가 다음날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고민보다는 폭파 장면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3시간이나 늦게 열린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하한가 일색이었다.  나 또한 내가 보유했던 모든 주식을 하한가에 던졌다.  그중 일부만 매도가 체결되었고 대부분의 주식을 울며 겨자먹기로 다음날까지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도 상황은 그닥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주식을 팔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었고, 호가창에는 매도 물량이 넘쳐났다.  그 상황에서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내 주식을 누군가가 사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불과 이틀만에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손실을 보고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나는 매월 주식 거래를 통하여 얻은 이익은 생활비와 저축으로 돌려왔었고, 그때 투자 원금으로 남아있었던 돈은 수익금의 일부였다.

나는 증권계좌를 모두 정리하고 주식시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큰 사건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와 같은 상황이 재발했을 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할테고 수익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무능한 시세 추종자로 남기는 싫었다.  그리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증권사에 근무하던 대학 동기가 선물,옵션을 공부해보라며 자신의 책을 택배로 보냈다.  나는 그저 배워두면 손해날 것도 없겠다 싶어 틈틈이 책을 읽었고, 친구의 권유로 선물,옵션 거래를 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의 거래가 일반 주식의 거래에서 얻은 수익보다 몇 배나 높았다는 사실을 보며 많이 놀랐었다.

상,하한가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일반 주식시장과 달리 그런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고위험군 선물,옵션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보의 취합이나 성실한 챠트의 분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불합리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때 내가 품었던 의문은 지금까지 이어졌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9.11 테러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저자는 '블랙 스완'이라고 지칭하며 왜 인간은 그런 불확실하고 돌발적인 사건의 예측에 취약할 수밖에(어쩌면 예측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극심한 충격을 주는 이러한 극단적 사건은 과거의 경험으로도 결코 추론할 수 없음을 저자는 조목조목 짚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근심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한다.  즉,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위험만을 인지하고 오직 그것을 걱정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일상적 화제 바깥에 도사린 문제, 즉 검은 백조의 출현은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경험적 회의론자인 저자의 견해는 우연성이 개입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낯설고 생뚱맞은 이론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피할 수 없는 '블랙 스완'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니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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