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그 주제가 언제나 비슷하다.
간혹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겠지만 매달 일정한 월급에 의존하는 직장인들은 주관심사가 재테크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나 정치, 직장 상사에 대한 뒷담화 또는 연예가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곤 한다. 매일 나누는 대화이니 질릴만도 한데 때로는 서로의 의견에 대해 치열한 격론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달리 관심을 둘만한 대상이 없는 일반 소시민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이고, 몇 가지 안 되는 메뉴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더웠던 탓인지 ’냉면’으로 의견 일치를 보고 가까운 냉면집으로 향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예전과 비슷한 주제의 대화가 오갔고 그마저도 이야깃거리가 바닥날 즈음에 때 맞춰 음식이 나왔다. 머쓱한 분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과도한 리액션이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20대를 기점으로 그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대화의 폭도 좁아지고 그러면서 자신도 삶의 테두리에서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지난해부터 내가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보면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영어야 그럭저럭 가르칠 수 있다지만 고등학교 이과 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었다.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볼 때 문제의 난이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이나 높았다.
그런 난관에 직면한 나는 영어만 가르치거나 아니면 아예 중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그도 아니면 숫제 그만둘까를 놓고 여러 번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영어, 수학을 모두 가르치며 지금껏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봉사활동의 보람이나 뿌듯함이 아니었다. 블로그에서 만난 지인들이나 직장 동료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모두 내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무기력해지고 그럴 때마다 삶의 변방으로 한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위한 작은 몸부림으로 시작한 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을 뿐, 사회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그런 거창한 의지는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만 9개월이 다 되어간다.
피곤하고 지치는 경우도 많고, 불쑥불쑥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 일을 잘 시작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에 지금껏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나이들수록 삶의 중심으로 더 접근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나 스스로 죽는 날까지 삶의 중심부를 향해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으로 살면 어떤 음식을 점심으로 먹든 어찌 맛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