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따라 노란 개나리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었다.
완연한 봄이다.
매년 맞는 봄이건만 어찌 이리도 새로운지....
새로 맞는 봄을 오롯이 새롭다 느끼는 것은 지나간 봄을 완전히 잊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망각, 또는 잊혀짐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도 제법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죽어 사라지면 내 아들녀석이 나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잊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한때는 누군가의 머리 속에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회상의 편린으로나마 구차하게 남아 영원히 살아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면 새로운 사람, 새로운 모든 것을 온전히 새롭다고 느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새롭다는 느낌은 내가 세상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징표와 같은 것이다.  지난 과거에 집착하여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삶은 죽은 삶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새로운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서 나온다.
과거의 기억에 덧씌워진 상태로는 변화하는 모든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를 바라보도록 한다.   똑같은 책을 다시 읽더라도 어제의 느낌을 지우고 다시 읽는다면 얼마나 새롭고 신선한가!  그리고 그 한 권의 책으로도 우리는 세상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가!  설령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우리는 그 기억마저 새롭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새롭고 충만할 것인가!

잊혀짐은 사멸이 아닌 새로움으로 다시 태어나는 '살아 있음'의 표상임을 이 봄에 새로 피는 노란 개나리에게서 배운다.  태동하는 봄은 잊혀져간 수많은 것들, 하나의 새로움을 위한 그 각고의 역사를 다시 깨달으라 말한다.
어제의 기억은 오늘의 잊혀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잊혀짐은 오직 잊혀질 때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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