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블루 -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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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맞춰 3박 4일의 크루즈 여행을 계획했었다.
가족 모두가 떠나는 여행인만큼 기대도 컸었다.  한동안 쓸 일이 없었던 여권도 다시 갱신하고, 7층의 발코니실로 예약을 마쳤다는 아내의 전화에 내일이라도 즉시 떠날 것처럼 설레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인터넷에서 우리가 탈 배와 여행 경로를 확인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일본을 경유하여 중국을 돌아오는 해상 여행은 나로서도 처음이었으니 기대와 설렘은 아들에 못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본의 대지진 한방에 아들과 나의 들뜬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철옹성 같던 원전이 쓰나미에 휩쓸려 처참히 무너지듯, 한동안 우리 부자를 들뜨게 했던 여행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신이 찾은 크루즈 여행 정보를 자랑스럽게 전해주던 아들의 목소리는 시든 화초처럼 생기를 잃었고, 내년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위로도 별무효과였다.

크루즈 여행을 계획한 것은 장인어른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그 여행에 동행하지 못할까봐 꼭 가야 한다며 몇 번이고 다짐을 두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내실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발코니실이 좋겠다고 하신 것도 장인어른이었다.
그렇게 공들인 계획이 아무 성과도 없이 취소되자 당신은 어린 손자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차피 여행은 취소되었고 내게는 휑한 기분을 달래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크로아티아 블루>였다.  많고 많은 여행기 중에 이 책이 유독 눈에 띈 까닭은 아마도 크루즈 여행 내내 기대했던 짙푸른 바다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하늘과 바다가 한 치의 기울어짐도 없이 팽팽하게 맞선 그 시간 내내 나는 몸과 마음이 묶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긴장의 끈이 해가 기울자 느슨해졌고, 먼 바다의 반들반들한 빛이 점점 더 넓게 번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서둘러 자리를 털고 마른 몸을 일으켰다.  바다에 나갔던 요트들이 곧 금빛 융단을 끌고 오리라."  (P.190)

작가는 발칸반도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오염되지 않은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헤어진 옛여인에 대한 그리움처럼 더듬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지명을 따라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새  아드리아해의 낙조를 등지고 파도 소리에 맞춰 일곱겹 드레스를 한겹한겹 벗는 이국의 여인이 떠오른다.

"붉은 사연을 안은 바람이 언덕을 미끄러져 하늘과 바다를 휘저으며 노닙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선명한 색의 향연, '맙소사'나 '눈이 시리다'는 표현은 이런 바다, 이런 하늘을 두고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내 가슴은 쉴 새 없이 펄떡이고, 바람과 햇살에 아릿한 풍경도 위아래로 떨립니다.  고성 앞 투명한 해변에는 한 소녀가 햇살을 등에 업고 느릿느릿 책장을 넘깁니다."  (P.286)

이처럼 나른한 봄날 오후에 펄떡이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마음은 벌써 먼 나라의 낯선 항구로 향하고, 오수의 유혹에 무거워진 눈꺼풀은 하루 종일 중력과 드잡이질을 한다.  슬픈 하품에  눈물이 흐르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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