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사카모토 류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홍시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은 다른 행성을 여행하는 것처럼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각자의 세상을 살고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한껏 겸손해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올곧게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당당히 들어낼 수 있기까지 내 생활에 얼마나 충실해야 하며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자서전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기술한다는 점에서 과장되거나 꾸며지지 않고 솔직하게 씌어진다는 것과그 삶에 견주어 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유익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자서전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언뜻 기억되는 것은 <월든>의 저자 스콧니어링 자서전과 듀크 대학의 교수로 있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는 재미와 감동의 면에서 어떤 소설보다 뛰어났었다.
이때부터 나는 자서전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자서전이란 한낱 자신의 위세를 들어냄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싸구려 도구일 뿐이라는 그동안의 편견을 불식시킴으로써 자서전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팝스타, 일렉트로닉 음악의 개척자, 실험음악가, 영화음악가, 영화배우, 작가, 환경·평화활동가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여지는 수식어는 너무나 많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인기, 높은 평가, 이름난 상을 수상하며 내로라 할 명성을 얻기도 했으니 천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진대, 명성에 비해 그의 자서전은 너무나 진지하다.  
꼼꼼한 주석과 연대별로 정리된 세밀한 기록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영혼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잠시 잊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이 독자들을 위한 그의 작은 배려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류이치 사카모토’하면 영화 ’마지막 황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주일이라는 짧은 기한 내에 작곡된 마흔네 곡의 영화 음악에 저자는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듯하다.  실제 영화에 쓰인 그의 곡은 절반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마지막 황제’는 그해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아홉 개 부문의 상을 휩쓰는 엄청난 결과를 냈었다.
2001년 9월.  세계인이 경악한 9.11테러의 현장에 있었던 그는 압도적인 충격의 이 사건 앞에서 예술은 아예 묵사발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해온 모든 음악의 원류가 미국의 패권주의, 또는 유럽의 패권주의나 식민지주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한다.

"그 테러는 분명 모든 사람을 수수께끼 속으로 빨아들인,  해석을 뛰어넘는 이벤트이자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을 단 한순간에 전혀 해석 불가능한 상태에 빠뜨리고 공포라든가 외경 같은 것을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 지향해온 것이다." (P.203)

3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10살부터 작곡을 시작해서 이날 이때껏 ’음악’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한 예술가의 삶.  그도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그의 관심은 자연과 모든 인간에게 쏠리고 있다.  한 분야에서 어떠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  자신의 관심의 폭을 인류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 나아가 자신의 관심이 모든 자연으로 향하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거장’이라 부른다.

"인간이 자연을 지킨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말하곤 한다.  환경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아예 발상 단계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거는 부하(負荷)와 자연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패자가 되는 건 당연히 인간이다.  즉 난처해지는 건 인간이지 자연은 전혀 난처하고 말 것도 없다.  자연의 거대함, 강함에서 보자면 인간이란 정말 한주먹 감도 안 되는 자그마한 존재라는 그 여행 내내 얼음과 물의 세계에서 보내면서 끊임없이 느꼈다.  그리고 인간은 이미 없어도 좋은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P. 229) 

과거에서 현재까지 자신을 정리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에 적잖은 이질감을 느꼈다는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뭔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나보다.
나는 그의 음악 "Energy Flow"를 들으며 거장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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