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 학생의 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보약을 지어 오셨다.
형편이 빠듯한 것을 잘 알고있는 나로서는 마음만은 알겠으나 절대 받을 수 없노라고 극구 사양했지만, 억지로 떠 안기다시피 하시고는 잠시 상담을 청하였다.
그 학생이 어렸을 때 남편과 이혼한 후로 자신에게 남겨진 아들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 왔단다. 그럼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제껏 아들을 학원 문턱에도 데려가지 못했다고 울먹이셨다.
그런데 나와 함께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들은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고마워 했다.
그리고 그 공을 다 나의 것으로 돌렸다.
아침에 출근할 때 그렇게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아들이 요즘은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고, 퇴근하여 보면 아들이 청소를 하였는지 돼지우리 같던 집안이 환해졌단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 잠시 할 말을 잃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변한 아들이 대견하고, 무엇보다 아들이 달라지도록 도와준 내게 고마움의 답례를 꼭 하고싶었노라고 하셨다.
그 말을 끝으로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시던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의 말은 듣지 않아도 내 말이라면 다 따르려 한다며 아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해도 괜찮겠냐 물으셨다.
나는 언제든지 상관없노라 답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내가 분명 무언가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음 속에 존경하는 누군가가 자리 잡는다 해도 부모는 언제나 자신에게 최고여야 한다는 것이 내 평소의 생각이었다.
그 누군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그로 인해 부모를 무시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면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학생을 조용히 불러 어머니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던 학생은 무작정 엄마가 싫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왜 싫은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냥 싫단다.
나는 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도 어렸을 때 그랬으니까.
"혹시 엄마가 싫은 게 아니라 그런 환경이 싫은 게 아닐까?  좋은 환경의 친구들을 부러워할수록 그런 환경에 자신을 낳은 엄마가 더 밉고... "
나는 그 학생에게 현실을 제대로 인식시키고 싶었다.
사실 어머니는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며, 학생은 그 환경을 자신의 힘으로 개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패배의식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모든 것을 바꾸어 주길 기대하며 의존하는 것은 어리광이자 치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제 그런 어리광을 부릴 나이는 아니라고.

아침에 산을 오를 때 쨍한 추위가 코끝에 맴돌았다.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으리라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은 유난히 피곤함에 시달린다.
어제 받은 보약을 먹고 출근한 덕분인지 오늘은 머리가 그나마 맑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겨울로 가는 저 햇살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힘이 되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