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시계 - 인연은 시간의 선물이다
장준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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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로 사는 내게 있어, 퇴근 후의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내느냐 하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고민거리였다.  사실 직장 동료를 늦은 시각까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눈치가 보이는 것도 그렇고 해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자 찾던 중 결심하게 된 것이 주변의 아이들을 모아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한 일이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나는 이제 아이들로부터 ’선생님’소리를 듣는 교사의 신분이다.  처음에는 수강료 ’무료’라는 말에 반신반의 하던 부모님과 학생들로부터 ’혹시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조금씩 자신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사이가 되었다.
주변의 반응은 냉랭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말과 함께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는 사람들까지 온통 부정적 시선만 가득했다.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업무시간 중 잠시의 짬을 이용하여 수학 정석을 붙들고 있거나, 피곤에 지친 내가 잠시 눈을 붙일 때면 곱지 않은 동료들의 시선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아이들과의 생활은 내게 또 다른 배움의 장이었다.
내가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보다 독서량도 늘었고, 오래 전에 손을 놓았던 수학 공부도 새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신간 도서에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보이면 나는 주저 없이 구입해 읽고 아이들에게 일독을 권하였다.

코스닥 상장기업 ’인포뱅크’의 창업자인 장준호님의 저서 < 산타클로스의 시계>가 내 눈에 뜨인 것도 이 책의 부제인 "인연은 시간의 선물이다"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제의 의미와는 상반된 책의 내용과 질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책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판매 목적으로 출간되었는지 출판사의 의도도 의심스러웠다.  책의 내용은 부모 잘 둔 덕에 어려서부터 고생 한 번 하지 않고 승승장구 하였던 자신과, 미국의 보딩 스쿨(사립 기숙학교)에 보낸 자식들 둘이 스탠포드 대학과 와튼 제롬 피셔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과, 회사 설립 초창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는 자랑과 함께 인포뱅크의 홍보성 멘트까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여 삼성 회장비서실에 근무하였던 저자의 화려한 이력에 걸맞게 자신 주변의 인맥을 이니셜이 아닌 실명으로 거론하며 자랑에 열을 올렸다.

"가난에 찌든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열여덟에 일본 수병으로 항공모함을 타게 됐다고 합니다.(P.247)....해방이 되던 1945년에 경찰이 되셨습니다.(P.248)...아버지는 1968년 지금은 태백시가 된 삼척군 장성읍 경찰서장으로 부임했습니다.(P.248)"

"기석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미국 동부에 있는 태프트 스쿨 12학년에 재학 중인데 2010년 가을에는 미국 대학에 진학할 예정입니다.(P.110)...미국의 사립 기숙학교는 1년 학비와 기숙사비가 4만 달러에 이르고, 이것저것 합하면 아이 하나 1년 교육하는데 6만 달러는 들어갑니다.(P.111)"

"2012년 2월 새로운 실내테마공간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가 짓는 아이쿠어리움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P.218)...2012년 많이들 구경 오시기 바랍니다.(P.221)"

"개개인으로 만나본 일본사람은 선하다는 느낌이 들고, 미국인들은 스스로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대체로 아름답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P.64)...지난 20여 년간 일본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들은 일본인이라는 것입니다.(P.215)"

누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책으로 출간할 자유가 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중에 하나이니까.  그러나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의무이기도 하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면 가까운 친인척과 주변의 동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비매품으로 출간하는 것이 옳다.  나는 이 책을 혹시 아이들이 읽을까 두렵다.  돈이 없어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다니지 못하여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인 나의 숙소에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책을 읽게 된다면 얼마나 좌절하고, 낙담할 것인가.  나는 그 상상만으로도 서럽다.
열심히 공부하면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말했던 나의 행동이 경솔하고 허황되다고 따진다면 나는 무어라 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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