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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사람이다
오영진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지나온 삶이 짧든 길든 간에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너의 안부가 궁금하고, 너의 오래된 추억이 궁금하고, 아직 오지 않은 너의 미래가 궁금하다.
삶의 궤적에는 항상 `나'라는 존재가 발자국을 남기지만, 내 상념의 궤적에는 늘 `너'만 존재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문득문득 `나'와 `너'는 독립된 개체가 아닌, 전체(또는 우주)에 포함된 일부분임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내 몸속의 각 기관이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여 독립된 개체라고 인식하지 않듯, 사람들 각자는 `사랑'이라는 질긴 끈으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임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의 파르마 신경생리학 실험실.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쥐기, 들기, 찢기,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기 등 손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전운동피질 영역(F5영역)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실험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질거라 상상하진 못했겠지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손의 움직임을 어떤 영역에서 명령을 내리는지 연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신경생리학자 갈레세는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인가를(결국 어떤 것을 쥐려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는군요.) 잡으려고 손을 뻗자, 그것을 지켜보던 마카크 원숭이의 F5영역이 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는 어떠한 것을 쥐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손움직임을 관장하는 전운동피질이 발화되었지요. 단순히 남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거울뉴런'이란 놀라운 발견의 시작이었지요. 이후 인간의 두뇌에도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두뇌가 상대의 행위에 대해서 인위적인 계산을 할 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거기에 약간의 비약을 추가하여 상대의 움직임에 대해서 자신도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남성의 주요부위에 매우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동영상을 보았을 때, 그 것을 보는 사람도 움찔해지는게, 거울뉴런에 의해 상대의 고통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말로 서론이 길어졌다.
이 책은 8,90년대의 특별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각기 다른 소제목의 스물한 가지 이야기가 내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내가 `나'의 이야기가 아닌`너'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까닭은 나는 처음부터 `너'의 일부로, 조각난 시대의 파편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한 시대의 작은 보푸라기로 살면서 시대 전체를 궁금해 하는 까닭이다.
사랑이라는 질긴 끈이 `너'에게 닿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하나로써 전체를 품는다.
나는 오늘도 너의 이야기를 읽는다.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던 생면부지의 너에게 구애를 하듯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나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데는 누구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의 한 부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닿지 못한 그 부분과 화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