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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ㅣ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평점 :
남은 분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내가 읽는 속도에 따라 200쪽, 100쪽,그리고...
끝이 보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전해 주는 감동이 다하는 것이요, 그와 더불어 닥터 노먼 베쑨의 안타까운 죽음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흉부외과 의사로서 부와 영예를 탐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터를 누비며 부상병을 돌보다 목숨마저 내놓아야 했던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 진실로 아름다운 삶이었다.
`의사들이 빵을 팔면서 보석의 값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던 그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실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의료행위로부터 사적인 이윤을 배제시켜 나가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직업을 탐욕스러운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듭시다. 가난한 이웃들의 희생 위에서 우리 자신을 살찌우는 행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합시다."(P.206)
서른여섯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그가 인공 기흉술이라는 당시로는 충분하게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치료법에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내놓음으로써 제2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가 러시아의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둘러본 후, 그가 그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들은 하나씩하나씩 실천에 옮겨진다.
빈민가의 아동들에게 예술의 기쁨과 창의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 `몬트리올 아동 미술학교’를 세우고 일체의 비용을 자신이 감당하는가 하면, 뜻을 같이 하는 의사들을 모아 국민보건그룹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1936년 진보를 꿈꾸는 전 세계 지식인들이 곤경에 빠진 스페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하여 스페인으로 달려와 프랑코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던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달라는 스페인 민주주의 원호위원회의 부탁을 받고 그는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한다.
그곳에서 그는 전장의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동식 수혈기법을 창안하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모여든 헌혈자로부터 모은 혈액을 저장하여 전쟁터의 부상병들을 살리는 혈액은행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그가 모금을 위하여 캐나다로 돌아와 청중을 상대로 한 연설은 의미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무솔리니는 특등 열차를 타고 로마에 입성하여 권좌를 차지했습니다. 이때 그가 내세운 것이 `공산주의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내세우며, 무서운 속도로 국민의 생활수준과 생명, 자유, 행복추구에의 권리들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최근에는 의심할 바 없이 그 신성한 임무의 일환으로 이탈리아를 군국화하고 아비니시아를 파시즘과 유혈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내세운 것도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독일을 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P.330)
"만약 여러분이 스페인 국민들처럼 자유스럽지 못하다면,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스페인 국민들처럼 여러분의 자유와 권리를 방위하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이 찍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스페인 국민들처럼 굶주리고 있다면, 그래서 여러분들이 빵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공산주의 위협’을 제거시킨다는 명목하에서 타도될 것입니다."(P.331)
그는 반공이라는 지나친 사기극을 그만두자고 호소하였다.
이 상황은 작금의 세계 움직임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는 어떤가?
전 세계 지식인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내전은 결국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시민군의 열정은 무참히 꺾이고 말았으며, ‘게르니카’가 고발하듯 잔인한 학살도 자행되었다. 그 학살을 지켜보면서 베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페인은 내 마음의 상처다.’ 라고 했던 베쑨의 한마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내가 베쑨의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그 뜨거웠던 열기와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직접 목도한 그의 심정을 말이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다음 해 베쑨은 다시 의료품을 챙겨들고 중국으로 떠났다. 1939년 11월 수술 중 베인 손가락이 세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중국 팔로군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베쑨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가슴에 깊이 박힌 상처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 것 아닐까?
세계는 변하였고 냉전체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끝났다.
그러나 그 이름을 달리한 사기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산주의 위협’에서 `테러와의 전쟁’으로 그 럴듯한 포장지만 바뀐 셈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억압과 학살은 모두 `공산주의 위협’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수많은 희생자의 삶과 자유, 행복에의 권리는 과연 그 허무맹랑한 사상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 밖에 없는지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