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로 가는 길 - 라사의 앞 못 보는 아이들, 개정판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음, 김혜은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강원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진 어느 봄날에 먼 친척뻘 되는 분이 우리집을 방문했었다.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일찍 귀가한 나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산중턱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기껏해야 집이 서너채에 불과하여 일년 내내 낯선 이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유난히 목청이 큰 우리집 개가 `컹컹’ 짖어대는 것을 필두로 우리의 시선도 그 낯선 방문객에게로 향하였다.
기타를 어깨 쪽으로 가로 질러 매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도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한 손에 든 흰지팡이로 더듬어 산비탈을 오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붙박힌듯 물끄러미 낯선 방문객의 행동거지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놀던 것도 그만 흥미를 잃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는 우리가 동구밖 언덕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있었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넬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시각장애인임을 알았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그때의 기억은 앞도 못 보는 분이 동행도 없이 어떻게 그 깊은 산골 오지를 찾아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것과 구슬픈 트로트 자락을 능숙하게 연주하던 그분의 기타 실력과 동네분들에게 침과 뜸을 놓아주던 유난히 길고 가는 손가락이었다.
그 후 단 한번도 그분을 다시 보지 못했지만, 거리에서 가끔 시각장애인과 마주칠 때면 늘 그분의 모습이 겹쳐지곤 했다.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석양을 등진 채 떠나던 그분의 모습은 애잔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그렇게 오래되고 빛바랜 기억을 떠올렸던 것일까? 
저자 또한 독일에서 태어난 시각장애인이다.
1970년 독일 퀼른에서 태어난 저자는 두 살 때, 시력을 잃게 되는 병으로 알려진 망막질환을 선고 받았다. 어릴 때에는 색이나, 얼굴, 풍경 등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열 두살, 시력을 거의 상실한 무렵 그녀는 마브르그에 있는 시각장애 특수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점자를 배웠고,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일년 동안 미국에 체류했으나 다시 독일로 돌아와 본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도 그녀에게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언어학 전공, 티베트학으로. 그리하여 사브리예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티베트 점자를 연구하게 된다.
1997년 스물여섯 살의 저자는 단신으로 티베트 라사로 향한다.
그녀의 꿈은 티베트의 앞 못 보는 아이들을 위하여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하고, 그들에게 점자를 가르쳐 동등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티베트 라사에 시각장애인 학교를 세운 한 여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녀는 현재 라사 시각장애인 학교 및 직업교육센터의 운영과 사업규모 확장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죄에 대한 벌로 이생에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고 돌마는 설명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귀신과 교류하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이 터무니없는 편견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기피대상이 되는 곳도 종종 있었고 심지어 시각장애인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불결하고 부정탄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P.57)

가을이다.
산에 올라 보면 여름내 나무의 성장을 돕던 나뭇잎들이 제 소임을 다했다는듯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하고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한이 없는 모습.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뭇잎은 가지와 연결된 생명의 줄을 스스로 놓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뭇잎처럼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미련없이 생명의 줄기와 결별하는 일이 아닌가.
나는 알고 있다.
봄이 육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영혼의 성장을 준비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나는 낙엽을 밟으며 영혼이 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올 겨울이 지나면 숲도, 나도 한뼘쯤 자란 성숙한 영혼으로 다시 만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