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인간에게 본능일까?  아니면 의무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본능이라고 말할 수도, 의무라고 말할 수도,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닌 본능이자 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열에 일곱, 여덟은 의무라고 답할 것이라 생각한다.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거나 유치원에 입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는 본능으로 보인다.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한 대상일 뿐이니 하루 종일 질문하고 배운다 한들 지겹다거나 재미없다고 느낄 겨를이 있을까?  어쩌면 하루가 너무 짧다고 한탄할지 모르겠다.
그랬던 공부가 제도권의 교육으로 옮겨오면 왜 갑자기 재미없고 따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일까?
어린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황순원의 소나기는 아주 적절한 본보기라고 볼 수 있다.
맑고 순수한 소년과 소녀의 가슴 짠한 사랑 이야기는 그 나이의 학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전해져야 당연한데, 교과서에 실린 작품에서는 그런 감동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은 ’먹장구름’이 복선이라는 둥, ’ 조약돌’이 소년과 소녀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소재라는 둥 소설의 감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만 기억하고 있었다.
간혹 나는 우스개소리로 조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를 교과서에 싣는다 하더라도 일단 교과서에 실리면 그 순간 재미 없어질거야.  그건 장담할 수 있다."라고.
그것이 어찌 국어 한 과목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겠는가.  아이들이 배우는 세계사와 국사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  우리가 볼 수 없는 원자와 전자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신비가 숨어 있는지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바로 시험과 성적에 대한 중압감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도 일단 시험과 결부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고 따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내 아들녀석의 예를 들어 보자.  자랑질 하려고 옮겨 적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아내는 초등 1학년인 아들에게 "Tonight on the Titanic"이라는 책을 CD와 함께 사주었다.  영어학원이라고는 다녀 본 경험이 없는 아들녀석이 CD를 들으며 책을 보고 있길래 살며시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책의 두께가 그리 얇지 않아 보였는데 아들은 열심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원어민이 읽는 것에 맞추어 책장을 넘기고 있는지 아니면 제멋대로 넘기는지 몰래 살펴 보았는데 아들녀석은 정확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웬만한 중학생도 하기 힘들어 보이는 것을 아들녀석은 너무도 손쉽게 해내고 있었다.  궁금해서 책의 내용을 아는지, 알아듣기는 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아들녀석은 대충 안다며 재밌다고 했다.
그렇다고 내 아들이 천재라거나 다른 사람 몰래 특별 과외를 시킨 것은 아니다.
아내와 나는 아들녀석이 하기 싫어하는 것은 시키지 않는 편이다.  학교 공부 외에 하는 것이라고는 학교의 방과후 학습인 창의력 수학(1주일에 1시간)과 논술 학원(1주일 1회)에 나가는 것이 전부이니 극성 부모는 분명 아닐 것이다.  학원이나 공교육의 맹점은 바로 시험과 성적이라는 부담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부모가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력 향상은 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를 위한 것인지 곰곰히 되짚어 볼 일이다.  지금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부모의 조급함은 교육당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나친 성과주의와 성적지상주의로 아이들의 미래는 병들고, 공부에 대한 재미를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은 분명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스스로 터득하고 하나하나 익혀가는 재미, 그것이 공부가 아니겠는가.  學而時習之, 不易悅乎?(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공부는 분명 본능이며 그렇게 유지하는 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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