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열두 가지 진실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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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엔 얼마나 많은 사악한 것들이 숨어 있는가. 그러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들을 이길 수 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리라."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가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거꾸로 읽는 로마 신화>의 유시주 작가는 상자를 연 판도라의 행위가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어둠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걸 상징한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지 않고는 그것을 다스릴 수도 없기에  판도라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도 두려움 없이 통찰하게 함으로써 이성의 힘으로 그것을 통제하는 길을 열어 준 은인인 셈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자유시장의 작동 원리를 강조하는 통화주의학파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주주가치 지향의 기업정책을 강조하는 알프레드 레퍼포트에 의해 촉발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에 대한 폐해를 조망하고 사회와 조직(또는 기업)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권력자에게 바벨탑의 붕괴 조짐을 경고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둠을 자각하게 하였듯 미디어 심리학과 조직 심리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책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면면에 내재하는 온갖 부조리와 그 속에서 신음하는 개개인의 심리를 파헤침으로써 시대의 종말을 창세기의 바벨탑에 빗대어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16세기 에스파냐령 네덜란드의 상업도시 안트베르펜은 구시대의 가치관과 통치 방식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거대한 물결이 충돌하는 혼돈의 도시였다.
천재화가 피테르 브뢰겔은 중세에서 근대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역사적 조류를 감지하고 바벨탑이라는 상징적 그림을 통하여 그림 곳곳에 시대의 종말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저자는 꼼꼼하고 영리한 한 화가의 그림 속에 숨겨진 암시를 정황적 근거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사회적 토대의 균열 조짐이 보이는 현대 사회의 내면을 분석하고 현대의 종말과 그 원인 및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경제 문제는 곧 권력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조종과 통제는 정치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소외된 중간계층’의 정치에 관한 부정적인 잡담, 그들이 내뱉는 비현실적 사회주의, 신낭만주의 환상세계로 후퇴하는 태도 등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위 3분의 1에 속하는 사회집단이 상품화된 사건 세계 속에 갇혀 사는 태도 역시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그런 방식의 은둔은 한계에 이르렀다.(P.287)
세계적으로 모든 경계가 무너짐으로써 발생하는 급속한 변화 과정, 즉 세계화는 부의 극단적 양극화, 상품으로 전락한 노동의 가치 상실, 실직에 대한 두려움, 인간 감정의 상품화, 텔레비전 시청 시간의 증가와 정치에 대한 냉소적 태도, 국가와 정치가에 대한 불신, 정신병적 자기애에 집착하는 CEO와 엘리트 계층 그리고 그들의 성향을 부추기는 텔레비전의 보도 행태 등의 부정적 변화를 유발하여 사회 구성원인 개인을 만성적 무기력증으로 몰고 간다.
어쩌면 우리는 개개인의 면면을 살피기에 바빠 사회 전체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숲 속에서 전체 숲을 보지 못하듯이. 
정치가가 정책 없는 정치를 하고, CEO가 자신과 주주의 이익에만 치중하는 것을 방치하게 되는 환경은 바로 텔레비전이라는 세속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속 종교인 텔레비전은 세계를 개선하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이따금 견딜 만하게 하거나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더 좋은 세상의 꿈은 언젠가는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의 패턴에 따라 일상생활을 지속적인 행복의 장소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깨닫게 된다.  꿈의 아내는 신경을 거스르는 골칫덩어리고, 꿈의 남편은 속빈 자기과시자이고, 꿈의 자동차는 너무 비싸고, 꿈의 집은 전기 먹는 하마이고, 꿈의 직업은 해고의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말이다.(P.197 - 198)
판도라의 마지막 단어가 ’희망’이었듯 저자가 제시하는 이 모든 부정적 현상들에 대한 마지막 결말은 희망이라고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각자는 인간의 삶조차 상품화 되는 이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폭력이 아닌 평화의 방식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브뢰겔처럼 시대적 중요 요소들을 각각 제시하고 그 요소들이 현실적인 전체 모습을 드러내리라 희망하는 것뿐이다.(P.251)
 우리는 피테르 브뢰겔의 두 번째 바벨탑과 같은 먹구름이 끼고 사람도 없는, 암울하고 을씨년스러운 그림을 미래의 청사진으로 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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