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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사는 즐거움
강제윤 지음 / 도서출판 녹두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강제윤 시인의 사이트를 둘러 보았다.
시인의 글처럼 단아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법정 스님의 추천 도서를 골라 읽다가 실수로 만나게 된 책.
같은 제목의 책이 또 있다는 사실을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실수로 만나게 된 인연.
삶은 수없는 실수와 우연으로 빚어진 하나의 완성품이 아닐까?
그의 글을 읽노라면 새봄의 온기가 내 온몸에 퍼지는듯 따뜻하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미끌어지는 잔모래처럼 내 마음에 물결무늬만 남기고 그의 글은 그렇게 흩어졌다.
시인은 고향 보길도를 떠난 지 20여년 만에 돌아와 ’보길도 시인’으로 살며 고향의 자연을 지키는 일에 헌신했으며 33일간의 단식으로 보길도의 문화유산 파괴를 막아 내기도 했단다. 문화일보의 ’평화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는 시인은 2005년 가을 홀연히 보길도를 떠나 청도 한옥학교 한옥 목수 과정을 졸업한 뒤 지금껏, 한국의 모든 섬을 순례할 계획으로 전국을 떠돌고 있단다. 이 책은 보길도 편지 두 번째 이야기로 오마이 뉴스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했다.
시인의 글 속에서 시간은 한껏 여유로웠다. 그 발걸음이 여유로울수록 닿는 시선에는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엄격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치 풀 수 없는 어느 경전의 문구처럼. 모순이 모순을 낳고 또 다시 모순이 모순을 낳아 풍선처럼 부풀어진 모순 속에서 우리는 실타래처럼 얽힌 모순을 풀어보겠다는 미련을 안고 산다.
생명을 만들어 내고 기른다는 것은 분명 경이롭고 신비한 체험입니다.
하지만 어찌 생명이 제 속에서 나온 생명만 소중하겠습니까.
마더 테레사가 언제 자기의 아이를 낳아봤기에 그렇게 이타적이고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가 아버지 노릇을 해본 뒤에야 인류를 위해 목숨바쳤습니까.
자기 자식을 낳아서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본 다음에야 진정한 사랑을 알고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말은 근거없는 통념일 뿐입니다.
부처는 자기 아들을 버린 다음에야 인류의 스승이 되지 않았습니까.
마리아는 자기 아들을 인류를 위해 바친 다음에야 비로소 인류의 어머니가 되지 않았습니까.
(P.243 - 244)
시인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과, 안타까운 사연들에 대해 말한다. 시인에게 여행은 삶이고, 삶은 곧 여행이었다. 모든 생명체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같이 신음하고. 같이 아파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 같은 일상이, 일상 같은 시가 그렇게 흘러간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나눔 이전의 나눔이며, 가장 큰 나눔의 실천입니다.
나눔이 무소유의 소극적 실천이라면 자발적 가난은 적극적 실천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노력할 때, 이 세계의 모든 가난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