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 나라의 예술 수업은 이발소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내게는 그랬다.
먹고 살 것이 급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예술이란 그저 희망 없는 사람들의 끄적임이나 흥얼거림 정도로 인식되었고,  예술가란 백수의 고상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예술 수업은 교과 밖의 과외 수업으로 변질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깎으러 들렀던 이발소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릉 속일지라도'가 걸려있었고, 오래된 전축에서는 트로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예술가는 오직 밀레, 푸쉬킨, 이미자 세 명 뿐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림은 그저 새로 산 아파트의 벽면을 장식하는 사치품이나 시간이 지나면 은행 이자보다 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 대상 쯤으로 여겼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한때 주식이나 부동산에 더이상 매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미래의 투자처는 그림 밖에 없다는 생각에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림릉 구경하러 화랑이나 전시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었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언질을 성경처럼 가슴에 품고는 그 안목을 어찌 높일까 고민했었다.  어린애 같은 발품을 오래도 팔고 나니 지치기도 했고, 원하던 안목도 높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연스레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대학시절 방배동의 지하차고를 빌려 미대 친구들로부터 데생을 배웠던 경험이 내 미술 공부의 전부였던 나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림과 화가에 대한 나의 편견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펼친 순간 미술 이론 시간에 그 이름만 듣고 배웠던 반 고흐의 치열한 삶과 예술혼을 경외심과 감동으로 읽어나갔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P.93)
이 책은 고흐가 28살의 늦은 나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면서 그에게 경제적 지원과 작품의 판매를 대행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지독한 고독과 가난에 시달렸던 고흐는 그가 그림 그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1872년 8월부터 1890년 7월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P.134)
칼뱅파 목사이셨던 고흐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맏아들에 대한 불신과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그를 멀리했으며, 그로 인해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지원했던 테오를 위해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림에 열중했으며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유화나 수채화 보다는 데생에 매달리기도 했고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여동생 윌에게 그는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너무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아라.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랑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라.  그건 주로 기질의 문제라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P.156)
정형화된 비례나 그림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든 감정과 느낌을 한 장의 그림에 담으려 노력했던 고흐는 그 시대 화가들에게 이단아요, 반항아였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사촌 여동생과의 사랑에 실패한 후 거리의 창녀 시엔과의 짧은 사랑, 그리고 고독.  고갱과의 동거와 간질 발작으로 결별.  그리고 정신병원과 요양원 생활.  그리고 자살.  
색채를 통해 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P.208)
실로 예술이란 평온한 대지를 바라보며 가파른 벼랑의 중간 쯤에 놓인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고 노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진보적 예술가에게는 동시대에서 맛볼 수 있는 열광이나 영광도 기대하지 못한다.
진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마부 없는 마차가 경사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것.  우리는 그때 짐짝처럼 실려 눈을 감은 채 그 위태로운 순간을 견디는 것.  그 순간이 끝났을 때 우리가 도착한 새로운 곳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어느 위대한 예술가나 선각자가 우리를 대신해 그 마부석에 앉아 고독과 위험을 감내하며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
나는 그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 스케치를 가슴으로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