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의 철학
마시모 도나 지음, 김희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철학적 담론’은 무의미하거나 가치 없음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유한성, 또는 부족이나 결핍에서 오는 공허함, 영원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 등이 가슴에 밀려오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무의미했던 말이나 인식이 간절함으로 변하는 것이다.  영원함에 대한 동경, 진리를 향한 열정이나 강한 욕망이 물밀듯 밀려오는 느낌은 비단 철학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격정적 추종, 광기에 가까운 무아지경에서부터 완전한 이성의 자유 의지에 의한 취함의 탐색을 시도하는 20세기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있어 술의 효능, 또는 기여를 더듬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서양 철학사에서 간과하고 있는 다양한 철학적 동인 중에 ’술과 취함’을 그 연구 대상의 하나로 올려놓기 위한 하나의 모험적 시도라 하겠다.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된 신들의 음료(포도주)는 그리스의 마지막 신 디오니소스에 이르러 그 신성한 상징성으로 재탄생 된다.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신과의 완벽한 일치를 이루도록 인간을 인도하는 유일한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광기로 존재하던 술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이르러 숨겨진 진리의 빛으로 이끄는 존재로서 철학적 인식의 범위로 편입된다.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에게도 유기체를 민첩하게 하는 효능을 인정하는 선에서 수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효능은 무절제와 방종을 낳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스토아적인 엄격함으로 변한다.  그리스 철학을 이은 로마 시대에는 술과 철학자의 완벽한 하모니를 꾀하기도 한다.  그리스 시대와 라틴 문명에서 술은 분석의 대상으로 찬양 또는 처벌이라는 영역으로 그 효능이 집약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지배했던 중세에 이르러 술은 생명과 구원의 상징이자 그리스도의 성혈로서 ’전질 변화’를 이룬다.  즉 토머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적 삶에서 신들의 음료는 사제의 축성에 의해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하는 것이며, 실존과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연관 짓는 중개자의 역할인 것이다.  중세에 있어 포도주는 전례 속에서 엄격하게 자리했음을 의미한다.  
구조적으로 신성화 되어 거룩한 나눔의 본질적인 상징물로의 변화를 겪은 신들의 음료는 에라스무스의 등장으로 각 철학자의 개별성으로 넘어간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는 플라톤의 향연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베이컨과 데카르트에 의해 자유 의지의 발현으로 개별화 되기도 한다.  이러한 소박성, 또는 개인적 기호와 성향으로 존재하던 술은 18세기 계몽주의에 이르러 절제되고 급기야 칸트에 이르러 철저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신세를 간신히 모면하게 된다.  피히테나 헤겔,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칼 막스, 니체에 이르기까지 낭만주의의 격정을 이겨낸 신들의 음료는 이제 서서히 철학에서 분리된 과학으로의 통합을 모색하게 된다.
즉 프로이드와 함께 이성을 초월하는 매개체로서의 술,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간자로서의 효능에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취함은 무의식의 발현으로서 관찰되고 실험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하이데거, 사르트르, 질 들뢰즈, 미셀 푸코로 이어지며 실존으로서 존재하는 취함은 관찰의 영역, 연구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 책은 시대별 철학가의 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사례를 중심으로 철학의 변천사를 훑고 있다.  선과 악, 덕성과 타락이라는 야누스적 이중성을 지닌 인간의 본질적 실체에 접근하려는 철학의 문제에 있어 술은 동일 시대의 유행을 따랐기보다는 시대의 영향 속에서 개인적 성향이 우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술은 자신의 주량과 기호에 따라 예술적 영감이나 활기를 불어 넣는 유용한 도구일 수도, 타락으로 인도하는 저주의 산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술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는 불안한 하루의 일상을 마감하며 외칠 것이다.
"술이나 한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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