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고약한 날씨다.
기상청 예보대로 황사가 있는지 코도 매케하고, 봄바람도 드세다. 
더구나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외출도 여의치 않아 독서나 할 요량으로 집어든 책이 <사유하는 도덕경>이다.   한마디로 어려운 책이다.  노자의 군더더기 없이 짧은 철학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그 여지를 주고 있지만, 나의 사고는 그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고 뱅뱅 원을 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진도로 언제 81장(章)에 이르는 그의 시를 다 읽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고전을 읽을 때 빠져들게 되는 보편적 진리의 깊고 그윽한 맛 때문이다.  조금 쉽게 해석한 도덕경이 없을까 찾던 중에 만난 이 책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너무 얇은 책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조금 두꺼운 책은 장황한 설명에 나의 사유가 끼어들 여지가 없게 만든다.  오전 내내 제1장도 이해하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이다.  구제불능이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상도(常道)가 아니고,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無欲)으로써 그 무의 오묘함을 보고, 항상 유욕(有欲)으로써 그 유의 왕래를 본다.  이 무와 유는 동시에 나왔지만 그 이름을 달리한다.  유/무를 동시에 말하여 현묘(玄妙)하다고 한다.  현묘하고 현묘하도다.  그것은 온갖 묘리(妙理)가 출몰하는 문(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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