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바람을 가르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 몽골 여행기
신영길 지음 / 나무생각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낙    화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하며 여행을 떠나던 적이 있었다.

이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늘 홀로 떠났던 여행. 

여행지의 사람들과 풋사랑처럼 정들고 뒤돌아설 때 한 줄기 눈물을  기대하는 여행.

내게 여행은 이별의 기억을 간직하는 짙푸른 슬픔이었다.

그랬다.  여행은 시인이 노래하듯, 가야할 때를 기약하고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내 여행의 기억은 만남보다 이별이 먼저 떠오른다.

책의 맨 뒷장을 펼쳤다.  내가 그랬듯 작가의 이별을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별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에서 그가 보여준 풋풋한 감상과 아마추어 작가다운 신선함에 한껏 매료되었었는데......

몽골 초원을 향하여 떠났던 그의 여행은 바람과 말과 초원과 칭기즈칸과 별과 먼지,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의 반복과 기성작가의 못된 습성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하지만 조금 부풀려진 감성, 옅은 미소를 떠올릴만한 과장된 표현에서 독자는 자신의 현실을 잊고 작가와의 여행을 기꺼이 허락할 수 있건만.....  작가의 감성이 메마른 탓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한 권의 책을 낸 그가 기성작가의 흉내를 내고 싶어서였을까.  자신의 느낌과 억지춘향으로 지면을 채운 인용문이 뒤섞여 여행의 감흥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여행지에서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썼음직한 글들도 간혹 보이지만 그마저도 다른 인용문들에 가려 빛을 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작고한 조병화 시인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여 발간한 책에서 앞에 쓴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며 지면을 메운 모습을 접한 후에 다시는 그분의 책을 사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쓸 말이 없을 때는 한줄의 글로 줄일줄 아는 용기가 작가를 작가답게 하지 않을까?  자신의 욕심으로 꾸민 한 권의 책보다는 한줄의 메모가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실 때가 있음을 그는 몰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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