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의 기억은 때론 혼재되거나 소멸하고, 왜곡되거나 재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란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에 의해 차례차례 기억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모두 진실임을 입증할 방법도 전혀 없다. 따라서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고, 또 어떤 기억은 최근의 일이지만 까마득한 옛일처럼 희미하거나 아득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지나쳐온 시간은 물리적인 순서를 따지는 게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가 사건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학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2024년 12월 3일, 난데없는 계엄령 발표와 그로 인한 국민들의 혼란과 공포. 돌이켜보면 그로부터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다.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는 계엄령 발표에 사람들은 다들 "지금 시점에 왜? 뭐 때문에?" 하면서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머리에서 비롯된 발상인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를 기다리는 지난한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보내지 못했다. 환율은 치솟고, 소비심리는 급격히 위축되고, 기울어져가는 난파선 대한민국호의 이용객들은 다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겠는걸.' 하는 우려는 꾸준히 높아져만 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해가 바뀐 2025년의 청명일이자 암브로시오(윤석열의 세례명) 성인의 사망일이었던 4월 4일, 그토록 애를 태우던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에 대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의 파면을 선고하였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사람들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이 낭독되는 순간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벅차오르는 감격을 나누었다. 이로써 대한민국호는 항로를 잃고 좌초 위기에 빠졌던 상황에서 벗어나 조금씩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주말을 맞는 식당의 점심시간. 모처럼의 활기에 주문을 받는 사장님도,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도 모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의 기억은 때론 혼재되거나 소멸하고, 왜곡되거나 재탄생하기도 하지만, 4월 4일 오늘의 기억은 온전한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기를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웃음을 향해 기도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만 꽂아도 싹이 난다'고 하던데 오늘은 청명을 하루 넘긴 한식. 하늘은 희끄무레 어둡고 이따금 비가 내린다. 저 비와 함께 대한민국에도 새 생명이 움트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