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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현주 옮김 / 더모던 / 2024년 7월
평점 :
생각 없이 무작정 하다 보면 뭔가 이루어질 때가 있다. 그러한 성취에 대해 혹자는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꼴'이라고 한껏 깎아내려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단순히 운만 작동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 싶다. 운이라는 것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류의 일들은 대개 '조금씩이라도 꾸준히'라는 기치 아래 반복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그렇고 아이들의 독해력이 그렇다. 짬이 날 때마다 무작정 운동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살도 빠지고 시나브로 독해력도 부쩍 향상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의 작가 '사이토 다카시'가 쓴 <훔치는 글쓰기>는 책의 첫머리에서 예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독해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인이 과거에 비해 문자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없는데 정작 독해력과 글쓰기 능력은 높아지지 않는 것일까? 작가의 평가는 냉정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비단 일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문해력 저하로 인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한 업체에서 행사와 관련한 게시글에 마음 깊은 사과의 의미를 담아 '심심(甚深)한 사과'란 표현을 썼는데, '심심한'이라는 뜻을 '지루하고 재미없는'으로 오해한 다수의 사람들이 발끈하여 항의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의 전반적인 문해력 저하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내가 말하는 '읽었다'의 기준은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봤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눈동자만 움직여 글자를 '본 것'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p.32)
이와 같은 논란의 저변에는 언제나 독서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곤 한다. 사실 독서가 습관화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독서를 권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이토 다카시 역시 평소에 관심이 있는 잡지에서부터 독서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렇게 재미를 붙이면 단행본이나 문고본 등 책의 세계로 옮겨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위주로 읽되 자신의 관심사를 서서히 넓혀가라는 게 작가가 권하는 독서 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글쓰기의 단계로 넘어간다.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작가는 이 책에서도 글쓰기 관련 노하우에 대해 간략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주어와 술어를 대응시키는 '대응 의식'을 완전히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이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은 말할 때에도 문장의 꼬임이 적어지게 된다. 거꾸로 문장에 꼬임이 많고 횡설수설하는 사람은 쓰기 훈련을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다." (p.85)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좋은 글쓰기의 기본은 다독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많은 생각과 깊이 있는 사유(多商量)를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그들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많은 글쓰기(多作)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는 더러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식적인 원리를 꾸준히 실천하고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 <훔치는 글쓰기>의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글쓰기 상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평소 독서와 글쓰기로 단련된 사람은 어휘가 풍부한 덕분에 대화에서도 의미의 함유율이 높은 대화가 가능하다. 의미의 함유율을 높이는 것이 이번 책의 숨겨진 테마이다. 말하기의 잔기술은 말 그대로 잔기술일 뿐, 독서와 글쓰기 기반이 없다면 지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설득력 있는 문장을 구사할 수 없다." (p.177 'EPILOGUE' 중에서)
연일 입춘 한파가 매섭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독서와 필사를 즐기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일견 반갑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처럼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는 시기에는 퇴근 후의 음주 약속을 잡기보다 일찍일찍 귀가하여 따뜻한 방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이 자신의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훨씬 큰 이득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훨씬 더 힙(Hip)해 보이는데 그것 역시 취향의 차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