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의 요체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중요성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 스스로도 반성해야 하는 점이 많은 인간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현실에 있어서 두루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도,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강박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까닭도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도와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도와 당시에 갖는 상대방의 생각을 100% 완벽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 때의 얼굴 표정이라든가, 몸짓이라든가, 시선이라든가 하는, 이른바 말에 동반되는 여러 요소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반대로 내가 말을 할 때 듣고 있는 상대방 역시 나의 생각이나 의도를 곡해하거나 무시할 수 있음을 사실로써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나의 생각을 몰라준다고 섭섭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부류의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위에 언급한 소통의 기본을 소홀히 하거나 완전히 무시하는 인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입니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도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말조차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했던 말도 수시로 바꾸거나 하지 않았다고 완강하게 버티곤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어느 누구와도 소통다운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한 사회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어 더없는 불행이자 악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집권한 2년 반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에서 퇴보에 퇴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를 우리 사회에서 영구히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지금 사계절 출판사의 신간 <다이내믹 코리아>를 읽고 있습니다. 2022년 봄부터 시작된 '토론의 즐거움'이라는 모임에서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 지금까지 140여 회의 토론을 이어오고 있다는데, 이 책에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한 13개 토론문이 담겼다고 합니다. 토론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주식 칼럼니스트, <지금은 없는 시민>을 쓴 강남규 작가, 박권일 연구자, 신혜림 피디, 은유 작가, 이재훈 기자, 장혜영 전 국회의원이 그들입니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은유 작가의 말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짜 시민들이 달려가서 장갑차 같은 거랑 맨몸으로 맞섰잖아요. 그거 보는데 너무 눈물이 나고, 광주항쟁 사진에서 봤던 거랑 겹치면서 이게 어떻게 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압박해왔어요. 제가 아는 활동가도 국회에 달려가서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더라고요. 아는 사람이 거기 있으니까 더 미치겠더라고요."
봄날씨처럼 포근한 주말 오후입니다. 다음 주는 강력한 입춘 한파가 예고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미 2년 반이라는 긴 겨울을 겪어 왔던 까닭에 큰 두려움 없이 다가올 한 주를 맞을 수 있을 듯합니다. 잠깐 동안의 추위를 견디면 곧 봄이 온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우리 사회에서도 암적인 존재를 걷어내고 말하는 이의 의도와 생각을 잘 읽으려 노력하는 새로운 사람을 최고 권력자로 맞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