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부산할 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뭘 해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 하던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몸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걱정거리로 내내 정신이 딴 데 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이 없거나 마음이 고약해서 그런 건 아니다. 타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찬찬히 살펴 여느 날과 다른 점을 단숨에 캐치하는 것은 물론 그 원인도 얼추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눈치가 없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넘사벽의 경지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일견 좋을 수도 있고, 때론 불편할 수도 있다.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약간의 그림자만 드리워도 '너 요즘 무슨 걱정 있니?' 하고 물어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속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침부터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붙잡고 있는데 도통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읽었던 문장을 또 읽고,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아 페이지를 넘겨 처음부터 다시 읽는 일을 서너 번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늘도 나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뿌옇게 흐려 있다. 활동하기에 적당한 기온과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풍경. 더없이 좋은 계절에 이토록 마음이 심란한 것은 복에 겨운 탓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별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이 새하얀 지면은 수십만 년 전부터 별들에게만 바쳐져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순결한 식탁보. 그리고 그 식탁보 위, 내게서 15 내지 20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까만 조약돌을 하나 발견했을 때, 나는 위대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쿵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300미터 두께로 쌓인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었다. 그 거대한 지층 전체가 절대적인 증거라도 되는 양, 돌멩이 하나라도 거기 있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지구의 원만한 소화작용에서 생겨난 규석들이 어쩌면 지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슨 기적으로 그것들 중 하나가 이토록 새로운 지표 위까지 올라오게 된 것일까? 그리하여 나는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안고 내가 발견한 물건을 주워 들었다. 단단하고 까맣고 주먹만 하며, 금속처럼 무겁고 눈물 모양으로 생긴 조약돌 하나를."  ('인간의 대지' 중에서)


군대에 간 아들은 다음 주에 첫 휴가를 나온다고 한다. 내가 군생활을 했던 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첫 휴가에 대한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나저나 얼마 전에 보낸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결혼·여름>은 다 읽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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