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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평점 :
얼마 전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이 2만 원을 넘나드는 바람에 장을 보는 주부들의 한숨이 깊어졌던 적이 있었다.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근래의 일이다. 그렇다고 배추 가격이 뚝 떨어져 지금은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배추의 가격이 이렇게 고공행진을 하다 보니 사람들은 다들 '김치'를 일러 '금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토록 싸고 질 좋은 식재료인 배추를 얼마나 무시하고 천대했던가 하는 반성이 절로 들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서리가 내린 밭에서 지난가을 일손이 모자라 마저 수확하지 못한 배추가 하얗게 얼어 말라가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겉이 얼어 흐물흐물해진 배춧잎을 몇 겹 걷어내고 나면 아직 얼지 않은 싱싱하고 노란 고갱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뚝뚝 끊어 흐르는 냇물에 대충 씻은 후 한입에 우적 씹었을 때의 입안 가득 퍼지던 알싸한 단맛을 나는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기름을 조금 두른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던 연한 배춧잎의 슴슴한 맛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그렇게 조금씩 속이 썩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것이 배추적이었다. 날것일 땐 달았던 배추도 밀가루를 묻혀 구워놓으면 밍밍하고 싱거워졌다. 생속을 가진 사람은 배추적의 맛을 몰랐다. 배추적을 입에 넣어 "에이 뭔 맛이 이래? 싱겁고 물맛만 나네!" 하면 자기 속이 생속이라는 고백이었다. 곱게 자란 처녀들이 그랬고 남자들도 대개는 그랬다. 하긴 남자들 상엔 배추적 같은 허드렛 음식은 아예 올리지도 않았다." (p.17)
김서령의 에세이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뭉클한 마음도 들었다가,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가, 손에 닿을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한 과거의 어떤 순간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들게도 된다. 유튜브에선 시시각각 먹방이 올라오고 어느 OTT 플랫폼의 예능 프로그램에선 요리 대결이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순식간에 부쳐내던 배추적의 맛에 필적할 요리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나는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추억의 맛인 동시에 깊어가는 겨울밤에 맛보던 불혹의 맛이었다. 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거나 목 넘김이 있기 전에 아주 잠깐 속게 되는 '얕은 맛'이 아니라 어느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 웅숭깊은 '불혹의 맛'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맛 속에 별의별 것이 담겨 있었던 것만 같다. 무와 콩을 길러낸 척박한 땅에 비치던 은은한 햇볕과, 땅속 깊이 인색하나 달디달게 숨어 있던 지하수와, 눈물이 돌 것 같은 겸허와, 수도승같이 맑은 인내와, 텅 빈 밭이랑 위로 불어오는 바람결 같은 가난과, 그 가난과 짝을 이룬 꼿꼿한 자부와 자존심이 슴슴한 익지 맛 안에 모조리 담겨 있었던 것만 같다." (p.121)
남들이 들으면 '잘났어 정말' 하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지만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엔 오히려 사람들이 맛을 잃어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맛 저 맛이 한데 섞여서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땅속에 묻어두었던 무를 꺼내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시원하고 상큼한 단맛은 무가 품었던 원래의 맛, 어떤 것에 의해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순수의 맛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가 갈수록 각각의 식재료가 갖는 순수의 맛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이를 시리게 했던 청정 계곡물의 물맛을 잃은 우리가 수돗물의 염소 소독제 냄새를 원래의 물맛인 양 기억하는 것처럼.
"제삿날 어스름 저녁이면 엄마는 마루 밑 밤 구덩이에서 밤을 한 바가지 캐냈어요. 흙속에서 적절한 수분과 온도가 유지된 밤은 갓 따낸 듯 싱싱해요. 아, 밤이 그토록 여러 겹의 껍데기를 둘러쓰고 있었던 건 바로 이것, 제 몸을 보관에 용이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어요. 감이 곶감이란 형태로 가공되어 겨울을 나고, 대추가 쪼글쪼글 마른 채 겨울을 난다면 밤은 수분이 사라지면 존재 이유까지 위협받잖아요. 겨우내 제사상에 올라가려면 몸을 보늬로, 야문 껍데기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매사 입장 바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니깐요. 그래야 세상의 전체 구도가 보이지 않겠어요?' (p.253)
한 차례 가을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급변하고 있다. 가을빛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풍요로운 계절에 서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만 있다. 2kg 토마토 가격이 25000원을 호가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는 사과, 배추에 이어 토마토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썼다. 이제 우리는 뭘 먹으며 겨울의 허기를 달래야 할까? 썩은속을 달래주던 배추적의 밍밍한 맛은 이제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일까? 우리의 속은 더욱 썩어 문드러져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