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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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것이,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르긴 해도 많지 않을 듯하다.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살아가거나 특별한 생각도 없이 시간의 관성에 따라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중 몇몇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자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테고, 또 그중 몇몇은 살아가는 자체가 지옥이자 천형이라고 개탄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삶은 맛도 형체도 없는 무색무취의 그 무엇이며, 특별한 날에나 하는 어떤 이벤트처럼 어떤 대답도 기대하지 않고 묻게 되는 공허한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디에나 있고 그 어디에도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애정 결핍자들은 안다. 우리는 끌려다닌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고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에 입은 벌어진다. 물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새끼 거북이들처럼 무모하고 일방적이다. 가는 수밖에 없다. 끌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망하는 것은 내 쪽. 구겨지는 건 내 마음뿐. 끌어당기는 쪽은 죄가 없다. 허락 없이 마음을 연 사람만 바보지."  (p.10)


정용준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1급 말더듬이다. 혼자 생각하고 글로 쓰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타인 앞에서 입 밖으로 단어를 발음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114 교환원인 엄마와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IMF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20세기말의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처럼 휘청이며 앞을 향해 어렵게 나아가고 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세기말의 불안을 안고.


"새해다. 새로운 세기의 첫날이다. 날짜의 앞부분이 1999에서 2000이 됐다. 새로운 느낌보다는 크고 뚱뚱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새해다. 밀레니엄이란 말을 하도 들어서 도대체 밀레니엄 시대엔 뭐 얼마나 달라지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1월 1일을 기다렸는데 허무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말더듬이다. 20세기에도 더듬었는데 21세기에도 더듬을 예정이었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허탈했다. 우려했던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동차는 하늘을 날지 않았다. 외계인이나 UFO도 지구에 오지 않았고 해도 달도 떨어지지 않았다."  (p.85)


중학교 1학년의 1급 말더듬이인 나는 학교의 동급생과 선생님,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용기를 잃었지만 언어 교정원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는다.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호칭과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소년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국어 선생님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기도 하고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전 남자친구 중 한 명에 대한 마음의 소리를 노트에 옮겼다가 들키기도 한다. 그렇게 소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창밖이 밝아졌고 쓰레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볼펜을 놓고 스탠드를 껐다. 노트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글자를 썼다. 많은 사람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고 나왔더니 긴 터널을 통과한 것처럼 어지럽고 피곤했다. 그런데 좋다. 시원하다. 쓴 것들을 다시 읽어 봤다."  (p.145)


동물이든 사람이든 약자에 대한 보호나 연민보다는 놀림이나 공격이 더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약자를 최일선에서 보살펴야 하는 대한민국의 인권위원장이라는 자가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그런 논리가 어찌 이치에 닿을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발적으로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하기를 원할까. 비주류에 속한다는 건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 그것은 곧 강자의 공격을 평생 감내해야 한다는 것인데 예수와 같은 성인이 아니라면 스스로 그와 같은 고난의 길에 들어설 리 없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천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인권위원장은 그들을 돌볼 생각도, 그들 편에 설 생각도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은 그렇게 잔인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 중에는 그와 같은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따금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애달프다. 속절없이 견뎌야 하는 그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 답답하다. 역사의 진보는 무척이나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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