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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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으로 갈수록 위트와 유머가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대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인이나 직장 동료 등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거나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하나의 이유로 작용할 것이다. 위트와 유머가 사라진 대화는 칙칙하고 어둡다. 어떤 의무감으로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면 칙칙하고 어두운 대화를 길게 이끌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싶다. 그러므로 노년의 대화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고, 대화를 통해 유행하는 기술이나 재치를 연마해야 하는 위트와 유머는 더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실버 센류'를 소개한 책이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 센류라 함은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를 일컫는 말로서 풍자나 익살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그러므로 '실버 센류'는 노인 세대가 쓴 센류를 말한다.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의 주최로 2001년부터 매해 열리는 센류 공모전의 이름이기도 한 '실버 센류'에 접수된 11만 수가 넘는 센류 응모작 중 여든여덟 수를 추려 담은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에는 노인들의 웃픈 이야기가 한 줄 시에 담겨 있다. 제목만큼이나 특이하고 기발한 시구를 읽다 보면 왠지 모를 아련한 슬픔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차오르지만 노인 특유의 풍류와 익살이 옅은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한다.


1부의 첫 장에 담긴 시구 "당일치기로 가보고 싶구나 천국에"를 시작으로 "LED 전구 다 쓸 때까지 남지 않은 나의 수명",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개찰구 안 열려 확인하니 진찰권" 등 노인들의 생활밀착형 개그와 유머가 주를 이루지만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재치가 넘치는 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이라는 시구도 있고, "혼자 사는 노인 가전제품 음성 안내에 대답을 한다"라는 시구도 보인다. 생활에서 비롯된 반복적인 관찰이 아니고선 도저히 떠오를 수 없는 말들이다.


현재형으로 말할 수 없는 가을이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그렇게 조금씩 늙어갈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메메토 모리!'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나도 언제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늙지 않은 채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울하거나 풀이 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책에 나오는 여러 시구처럼 자신의 처지를 웃음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좋은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동 응답기에 대고 천천히 말하라며 고함치는 아버지"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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