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루스트와 오징어 - 독서의 탄생부터 난독증까지, 책 읽는 뇌에 관한 모든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6월
평점 :
대학생이던 아들은 휴학을 하고 얼마 전에 군인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훈련병 신분이지만 말이다. '까꿍' 놀이를 좋아하던 아들이 어느새 자라 군에 입대를 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20여 년의 세월이 무성영화의 필름처럼 빠르게 감긴 느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들은 순하고 명랑한 아이였다. 그러나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았던 아들의 건강에 대해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썼던 아내는 가뜩이나 약했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아들의 먹거리와 위생에 온 힘을 쏟았다. 달리 도와줄 게 없었던 나는 하루 건너 한 번씩 아들을 데리고 잤다. 나와 함께 자는 날이면 아들은 늘 <사과가 쿵>이나 <마녀 위니>를 들고 와서 내게 읽어 달라곤 했다. 다 읽고 나면 다시 제일 첫 페이지를 펴서 다시, 금세 또 다 읽으면 다시 첫 페이지를... 나는 그렇게 책 읽기 개미지옥에 빠져 벗어나지 못했다.
"동화를 들으면서 감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동시에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는 보다 인지적인 차원의 통찰이 떠오른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책 속에는 마치 그림처럼 늘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길고 짧은 단어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진적인 지적 발견을 시작으로 아이는 책에는 고유한 언어가 있다는 보다 넓고 암묵적인 발견에 도달하게 된다." (p.166)
지금도 나는 아들이 어떻게 읽고 쓰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언젠가 집에 놀러 오셨던 수녀님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써보겠노라며 연필을 쥔 손에 힘을 주기 위해 바들바들 떨며 글자를 써 내려가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들은 그렇게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익혔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도로 주변의 도로 표지판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주차 금지'라는 말을 들었던 할아버지가 '금지'가 무슨 뜻이냐? 고 물었을 때, 아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작은 두 손을 X자로 겹쳐 주차하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하였다. 어린 아들의 설명을 듣고 대견해하시던 할아버지는 지금은 우리 곁에 없다.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저서 <프루스트와 오징어>를 읽는 내내 나는 아들의 성장 과정을 떠올렸다. 1부 '뇌는 어떻게 글을 읽게 되었을까', 2부 '뇌가 독서를 배우는 방법', 3부 '뇌가 독서를 배우지 못할 때'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인류가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문화를 창조하며, 대를 이어 정보를 전달하는 등 인류의 독보적이면서 경이로운 독서 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독서의 과정이 먼저 글자를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뇌가 그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을 우리의 기억과 연결시키고, 그렇게 누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지혜를 얻게 된다. 독서는 이처럼 경이로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저자인 매리언 울프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들의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서가 아들의 성장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주말마다 했던 대형서점으로의 나들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던 아들, 유학 한 번 다녀온 적 없고 과외 한 번 시킨 적 없는 아들이 스스로 공부하여 토익 만점을 받는 기적과도 같은 성취를 보여주었던 이면에는 어쩌면 '독서'라는 비밀 병기가 숨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난독증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세계적인 읽기 연구자인 저자가 난독증에 걸린 아들을 키우게 되었다는 건 하나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이유로 난독증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토머스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창의적인 천재들에게도 자주 발견되는 것을 보면 독서는 타고난 능력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학의 관점에서 난독증 연구는 빠른 속도로 헤엄치지 못하는 새끼 오징어를 연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오징어가 가진 약간 별난 회로를 들여다보면 헤엄을 잘 치기 위해 필요한 것과 그 오징어가 다른 오징어들처럼 헤엄치지 않아도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독특한 재능에 대해 알 수 있다." (p.57~p.58)
인류는 지금 디지털 대 전환기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소크라테스가 독서에 대해 염려했던 것처럼 독서에 익숙한 우리들 역시 동영상 매체를 탐닉하는 다음 세대의 행동 양식을 비판한다. 그러나 문자 언어가 아닌 다른 형태의 언어를 통해서도 독서하는 뇌의 발달은 지속될 것이다.
"'초월적 사고를 하는 시간'이라는 이 신비한 무형적 산물이 바로 독서하는 뇌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이다. 몇 밀리세컨드에 불과한 이 내재적 시간이 지식을 발전시키고 덕에 대해 사색하고 단 한 번도 표현되지 않았던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표현된 말은 다시 새로운 도약대를 만든다. 그러면 인간은 그것을 딛고 심연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도,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p.389)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요즘,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책을 읽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나 매리언 울프가 설명하는 인류가 독서 능력을 취득하게 되는 흥미진진한 과정을 책으로 읽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흘러가게 된다. 별도의 피서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책을 읽고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얼마나 귀중하고 값진 기회인가. 매리언 울프는 우리에게 그런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