껑충하게 큰 개망초의 여린 꽃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듯 흔들릴 때마다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듯 서글픈 마음이 북받친다. 고향, 어머니, 소식도 없는 어릴 적 친구... 바람은 그렇게 꽃대 무성한 개망초의 군락에서 장난꾸러기 어린애처럼 한참을 머물다가 가겠노라는 인사도 없이 조용히 스러지곤 했다. 비가 예보된 하늘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몰려들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서둘러 비를 피하려는 듯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끈적끈적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어제보다는 한결 낮아진 기온.


조지 오웰이 쓴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고 있다. 조지 오웰은 사실 소설보다는 신문기사와 논평에 더 특화된 인물인 듯 생각되지만 <동물 농장>이나 <카탈루니아 찬가>에서 보이는 그의 문학적 재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조지 오웰을 좋아하는 독자 중에는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겠지만 말이다. 둘러치든 메치든 조지 오웰의 탁월한 글솜씨가 나와 같은 사람의 평가에 의해 달라지는 건 전혀 없겠지만, 아무튼.


내가 <카탈루니아 찬가>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4일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이집트와 통하는 라파 검문소를 개방하는 한편 현장 상황 조사를 위한 제한 없는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있다. 25일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인근의 대피소가 드론 공격을 받아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0명이 숨졌다는 CNN 방송의 보도도 있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잔인성은 히틀러를 능가하면 능가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몇몇 나라가 등장했을 뿐이다.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페인이 그들 국가이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학살했음에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미국의 대학생과 유럽의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지진? 중국의 기근? 멕시코의 혁명? 걱정 말라. 내일 아침이면 현관에 우유가 놓여 있을 것이고, 금요일에는 <뉴 스테이츠먼>이 나올 것이다. 산업 도시는 멀었다. 연기와 궁핍의 얼룩은 지구 표면의 완만한 곡선에 감추어져 있었다. 이곳은 내가 어린 시절 알던 영국 그대로였다. 철로 때문에 파헤친 곳은 야생화로 덮여 있다. 외진 풀밭에서는 윤택한 빛을 발하는 준마들이 풀을 뜯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천천히 흐르는 냇가에는 버드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느릅나무의 녹색 가슴, 오두막 정원의 참제비고깔, 이윽고 런던 외곽의 드넓고 평화로운 광야, 진창 같은 강물 위의 짐배, 낯익은 거리, 크리켓 시합과 왕족의 결혼을 알리는 포스터, 크리켓 투수 모자를 쓴 남자들, 트라팔가 광장의 비둘기, 빨간 버스, 파란 제복의 경찰관. 모두가 영국의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때때로 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카탈로니아 찬가' 중에서)


껑충하게 큰 개망초의 여린 꽃대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라고 썼던 조지 오웰의 판단은 현대의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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