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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평점 :
인류사나 과학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 대한 인류의 지배력이 가장 강하고 그로 인하여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20세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하고 묻는다면 글쎄요? 하는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주식 격언에도 있는 것처럼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니까요. 인류의 힘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20세기를 지나쳐 온 우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물론 AI와 같은 초자연적인 과학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며칠,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는 내내 나는 문득 지난 1세기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크고 작은 분쟁도 많았고, 지역에 따라 생존의 위기에 처한 나라도 있었지만, 지구 전체로 볼 때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안정된 시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와 같은 힘의 밑바탕에는 어쩌면 다정함이나 사랑과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불쑥 들었던 것입니다.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P.381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그렇습니다. 20세기를 주로 살았던, 말하자면 20세기 토박이 작가인 박완서는 그녀가 썼던 어떤 글에서도 어머니 손길과 같은 다정함이 묻어나곤 합니다. 어쩌면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주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의 온도를 가장 섬세하게 포착한 작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기발한 표현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시대의 정서를 잘 포착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기 작가가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작가는 불혹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판단이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테지요.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P.172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에서)
박완서 작가의 애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삶을 비교적 길게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그녀의 글을 예사로 읽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허망하게 잃었던 작가가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보였던 절절했던 심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천주교 신자인 작가가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라도 당신은 있어야 해.'라고 썼던 당시의 피폐했던 삶과 끝내 그것을 극복하고 '이 세상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썼던 작가의 고백을 나는 마치 내가 겪은 일인 양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에는 언제나 사랑이 넘쳤습니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사랑이 있는 시대, 사랑이 있는 정치, 사랑이 있는 역사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고로 우리는 사랑이 있는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역사에 사랑이 개입해 본 적이 있나요. 우리 정치사에 사랑이 있어본 적이 있나요?" (P.158)
21세기를 갓 시작한 우리는 정말 주변의 사랑을 모두 잃은 채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뭐니 뭐니 해도 정치권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대의 작가들 중 많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잃고 극단적인 편가름과 서로에 대한 증오만 키우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국민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대 '자유주의 세력과 동료 시민'으로 양분하여 내 편이 아닌 자는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학계나 예술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박완서 작가는 어쩌면 사랑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사랑의 장으로 이끌었던 21세기의 마지막 작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증오와 파멸뿐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서막은 그렇게 열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이제 현실이 아닌 교과서에서나 배울 수 있을 듯합니다. 단지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