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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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면 할수록 개인은 그가 속한 국가나 기업에 순종적일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고, 지배자는 온갖 대의명분을 내세워 국민들을 마치 그들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노예화의 작업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영웅처럼 떠받들도록 하는 우상화 작업 역시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산업화를 추구하는 개발도상국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국가에서도 개인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상대적 박탈감을 주입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경주마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는 하나의 악이다. 그것도 거대한 악이다. 이에 비하면 조직폭력배의 악함은 실로 보잘것없다. 국가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재다. 그야말로 우리는 한 줌의 무리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환상에 결코 속지 마라."  (p.95)


일본의 노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는 마치 한 권의 잠언집처럼 읽힌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깨달은 평생의 지식을 시나 경구처럼 하나의 문장에 압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기에 독자는 하나하나의 문장을 허투루 읽을 수 없다. 짧은 문장을 읽고 곰곰 되새기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 읽고 생각하고, 다시 읽고 생각하는 단순 작업이 마치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내딛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의 연속이다.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도망친다면 악랄한 현실이 그 틈을 예리하게 찔러 곧바로 추락하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사는 동안 느긋한 생활을 맛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꿈은 이 세상을 뜨고 나서 꾸는 수밖에 없다."  (p.167)


힐링만 구하지 말고 혹독한 현실과 대결할 것을 주장하는 1장 '개인과 가족의 싸움', 국가를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지배층과 싸우는 것이 국가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2장 '가족이나 국가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 반골 정신과 강한 의지를 기르고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에 매진하여 충만한 삶을 살라고 강조하는 3장 '정신과 마음을 기른다는 것', 이 세상에 기댈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절대적인 진리를 직시하라고 하는 4장 '고독을 잊어서는 안 된다'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각의 문장이 모두 명령이나 확언에 가까운 격정적인 문체로 쓰인 까닭에 짐짓 국가의 전복을 기도하는 어느 반체제 인사의 선동 글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가난과 비참을 핑계 삼아 악으로 빠지지 않고 이겨 낸 사람은 마음속 깊이 사무친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지성이나 이성에 의해 다듬어지면 자애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타애적인 마음으로 해방되고 그 길을 밟는 사이에 삶의 깨우침을 얻는다."  (p.83)


국가와 국민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왔던 작가이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국가를 '거대한 악'으로, 그 뒤에는 국가를 사유하고 좌지우지하려는 소수의 지배층이 있음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가용한 돈이 모두 자기 것인 양 착각하여 마구 쓰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런 집단을 내버려 둔 국민이라고 말한다. 그들 소수의 무리에게 영혼을 뺏겨 부조리에도 분노하지 않고, 분노할 줄도 모르는 '들개'로 전락했음을 작가는 개탄한다. 일본인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이 '소극주의', '사대주의', '예속주의'이지만 이에 더하여 지배층의 폭정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무력함'이라고 작가는 단언한다.


격정에 찬 마루야마 겐지의 글이 비단 일본인에게만 필요하지는 않을 터,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언론을 장악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개개인을 검찰 권력을 통하여 입막음을 시도하는 등 과거 독재 정치로의 회귀를 꾀하는 현 정부의 모습은 마루야마 겐지가 지적하는 국가와 개인의 실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게다가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먹고사는 문제'에 더욱 집중하도록 하고, 이를 통하여 젊은이들이 한편으로는 정치에서 멀어지고 이념적으로는 우경화의 늪에 빠지도록 하는 모습은 작금의 일본과 비슷하다.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인간답게 존재하기를 바란다면 평생 간직해야 할 것은 저항이다. 오로지 그 숭고한 싸움을 계속하는 일이야말로 참된 인생을 참되게 산 증거가 된다. 거기에야말로 사는 의미와 목적이 감추어져 있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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