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풀렸다. 부쩍 게을러진 걸음걸이와 긴장이 풀린 허리춤 사이로 삐져나오는 살집이 그 증거라면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른한 오후 햇살에 주춤주춤 졸음이 쏟아지는 걸 보면 계절은 조금씩 봄을 향해 기울고 있음이다. 가벼운 바람에도 둥실 떠오르는 갈잎을 보며 산책을 나온 반려견이 영문도 모른 채 컹컹 짖고,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햇살처럼 밝았다. 땅에 부딪히며 힘차게 공명하는 농구공의 진동과 아이들의 웃음이 뒤섞인다. 더께더께 번지는 버짐처럼 마른 햇살이 공원 가득 부서지고 있다.


심리학자 스티븐 힌쇼가 쓴 <낙인이라는 광기(Another Kind of Madness)>를 읽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당사자인 동시에 아버지의 정신질환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심리 전문가로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정신질환과 낙인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한 가족의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과 먹먹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 환자를 둔 가족을 어떻게 돕고 돌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회적 수용도를 알아보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나지만, 현대사회에서 가장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세 가지 속성이 바로 노숙, 마약중독, 그리고 정신질환이다. 대중은 이런 속성을 가진 개인과 직접 접촉하길 꺼리며 이들에 대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이런 설문지에 응답할 때 대체로 사람들은 편협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절제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응답자 내면의 실제 수용도는 훨씬 낮을 수 있다는 말이다."  (p.61)


"훗날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기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낙인찍힌 집단의 구성원은 필연적으로 그 집단을 향한 사회의 메시지에 노출되게 마련이며 어느새 그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사회적 낙인이 자기 낙인으로 변하여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내재화한 낙인, 자신이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관점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비주류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개인이 자신의 약점과 도덕적 결함을 탓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신질환자의 경우 낙인의 내재화가 심각해지면 치료를 받아도 소용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거나 이미 치료를 시작했더라도 조기에 중단해버리기 십상이다."  (p.167)


오후 시간에 접어들자 바람은 점차 차가워지고 속도를 더하며 거칠어졌다. 우리가 삶의 이면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정신질환은 일정 부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멀리하고 당사자와 가족 전체를 낙인찍는다는 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하다 자신할 수 없는데 말이다. 볼에 닿는 바람이 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