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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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일이었으니 꽤나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강원도의 한 암자를 그곳에 계신 스님과 함께 올랐던 적이 있다. '그게 뭔 큰일이라고?' 하며 반문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암자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위치해 있던 관계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었고, 길게 이어진 철조망 사이에 난 엉성한 출입문조차 평시에는 늘 잠겨 있었다. 암자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던 그 길을 사람들은 적잖이 궁금해하면서도 출입문에 붙은 경고문구 때문인지 감히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스님과 함께 출입문을 통과하여 두어 시간의 산행 끝에 암자에 닿을 수 있었다. 그때 산 정상에서 내가 느꼈던 첫 느낌은 내가 문명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는 생소한 느낌이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그렇게 선명하게 들렸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너무도 조용하다는 건 아마도 인간이 내는 백색 소음이나 평소 우리가 들리는 줄도 모른 채 간과하며 지냈던 온갖 문영의 소리, 예컨대 차소리, 앰프 소리, 특정할 수 없는 온갖 기계음 등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상태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온갖 소음에 너무나 잘 적응이 되어온 탓에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선별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술을 아주 이른 나이부터 습득했다는 사실을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소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말 아무 소리도 없는 정적 상태는 고요하기보다는 고요함이 시끄럽게 설치고 잇는 상태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백색소음이 있는 것이 어떨까. 아무 소리도 없는 것보다는 백색소음이 있어야 마음이 더 안정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색소음이 있어야 집중이 더 잘되고, 잠도 더 잘 온다는 사람들도 있다."  (p.41)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었던 것은 지난달 중순께였다. 2년 전쯤에 읽었던 저자의 다른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여전히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읽게 된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다 할 리뷰를 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10.29 참사의 여파가 가슴 한켠을 차갑게 파고들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산다는 것은 허방을 짚듯 허망한 일이지만 이태원의 뒷골목에서 아프게 스러졌던 젊은 영혼들이 그와 같은 삶의 진리를 깨닫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끝내 안타까워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공권력은 폐허를 감춘다. 폭력과 재난이 발생한 곳의 삶은 폐허일 수밖에 없지만, 공권력의 화장술은 폐허의 사금파리들을 시야에서 흔적도 없이 치워버린다. 공권력이 폐허를 가리고 덮어 사람들의 망각을 부추길 때, 예술가들은 사람들에게 폐허를 상기시킨다."  (p.30)


1 '허무의 물결 속에서', 2 '부, 명예, 미모의 행방', 3 '시간 속의 필멸자', 4 '오래 살아 신선이 된다는 것', 5 '하루하루의 나날들', 6 '관점의 문제', 7 '허무와 정치', 8 '인생을 즐긴다는 것'의 총 8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생의 허무와 그것을 딛고 살아야 할 이유를 저자 나름의 철학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뜻언뜻 저자의 숨은 의도가 엿보이는 문장들이 등장하곤 한다. 주제에서 벗어난 듯한 이러한 문장들을 통하여 독자들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책의 문장들을 꼼꼼히 훑으며 시간을 소일하게 된다.


"그러면 누가 미숙한 정치가인가? 선한 의도를 과신한 나머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한 정치인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큰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 그 권력을 멍청하지만 과감하게 행사할 것이다. (......) 막대한 화재가 치밀한 악의를 가진 성인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막연한 선의를 가진 유아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직업 정치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유아에게 권력이라는 화염방사기를 쥐어줄 것인가의 문제는 결정할 수 있다."  (p.228~p.229)


최근에 우리나라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흔히 듣는 말은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유아에게 권력이라는 화염방사기를 쥐어줬기 때문이다. 그런 엄청난 선택을 한 대가는 참으로 혹독하다. 여와 야의 대치는 물론 남과 북의 극한 대치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최대치로 높아졌고, 이를 반영하듯 해외 투자자들은 서둘러 자금을 빼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환율은 치솟고, 수입 물가가 오르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본격적인 경기침체 상황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유아에게 권력이라는 화염방사기를 쥐어준 대가 치고는 너무 혹독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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