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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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시기가 되었다. 몇몇 친구들은 이미 명예퇴직을 했거나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이제 다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며 남은 삶을 살아갈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친구는 많지 않은 듯 보인다. 많지 않은 게 아니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함이 지금 내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 듯하다. 일에 묻혀 살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과거에는 마음껏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골프나 등산 등 누리지 못했던 여가 생활을 원 없이 누려보고 싶다거나, 아무도 없는 산골에 터를 잡고서 유유자적 한가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등 하고 싶은 일도, 바라는 것도 참 많았지만 막상 내 나이가 되고 보니 원하던 삶을 살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눈앞에 펼쳐질 무한대의 시간을 도대체 뭘 하면서 채워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귀농을 했던 몇몇 친구들은 1년도 되지 않아 도시로 복귀를 했고, 허구한 날 골프를 치던 친구도 이제는 그마저도 지겨웠는지 집 밖 출입이 뜸해졌고, 장사를 시작했던 친구들도 수월찮은 돈만 까먹고 폐업 절차에 접어들었으니 어느 것 하나 마음 놓고 선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과 여가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채 노후를 설계하겠다는 젊어서의 꿈은 한낱 꿈으로 그칠 공산이 커진 셈이다. 무작정 일만 쫓으면서 살았던 우리는 그 세월 동안 점차 노는 법을 까먹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노는 법을 까맣게 잊은 우리가 정작 노는 시간이 눈앞에 놓이자 허둥지둥 당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이해하기로 여가란, 결코 물리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설사 그것이 결국엔 우리는 물론 타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해도)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다. 여가를 누릴 때에는 가치보다는 기교가 훨씬 중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아무리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p.29 '들어가는 말'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학가 로버트 디세이가 쓴 <게으름 예찬>은 게으름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시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우리가 자신의 삶 속에서 즐겁게 뛰노는 법을 배움으로써 한가로이 삶을 즐기는 과정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삶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것은 결국 일에 매몰되어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타인과의 관계와 삶의 의미, 왜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지 못한다.


"노는 것은 당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키케로와 세네카는 그것으로 열변을 토했고, 중국부터 유럽의 가장 끄트머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그 통찰을 이야기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기간 동안 특정의 규칙을 관찰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노는 것에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몇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성직자들과 군대와 함께, 노동은 신성하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p.274)


저자는 '일해야 할 의무가 대체 무엇이 "성스럽다"는 말이냐'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고전문학 작품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 시트콤 <핍 쇼>와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그리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불러온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세계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거의 모든 사람이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신체에 무리 없이 창의적으로 일하고, 휴가는 길어서 매년 수백, 심지어 수천 시간을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마음껏 놀며, 근사하게 비옥한 여가를 마음껏 즐기는 세계 말이다."  (p.282)


멀리 중동의 사막에서는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월드컵 참가국의 국민들은 자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며 밤잠을 잊은 채 텔레비전 중계를 시청한다. 또는 그 각본 없는 드라마에 울고 웃고 탄식하며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놀이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이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렇게 지인들과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찾아오는 나른한 피로감에 까무룩 잠이 드는 것, 내일 아침 만나는 사람들과 어제 있었던 일을 주고받으며 하루의 일과를 무리 없이 해치우는 것. 우리의 삶이 죽음 직전까지 그렇게 활기찬 하루하루로 채워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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