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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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운명과 속절없는 투닥거림을 하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릴없는 넋두리에 불과하겠지만 이러한 투닥거림도 삶의 과정 중 하나라면 심한 마음고생 없이 빠르게 지나갔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이 땅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생각도 그러하냐고 차마 묻지 못할 때가 많아서 자신의 속내를 서로 내보이지도 못한 채 끙끙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세상의 불행이란 불행은 모두 자신 혼자 떠안은 양 우울해하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면서...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극락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이따금 만나는 누군가를 붙들고 자신의 속내를 툭 털어놓고 나면, 자신의 고민은 시나브로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다시 또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법은 자신의 고민을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고민이 입술 안쪽과 바깥쪽의 그 실낱 같은 경계 어느 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라는 극과 극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불운까지 겪고 나니 민식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져 엄마가 사는 청파동 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거기서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엄마가 편의점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유산에는 분명 그의 몫도 있었을 것인데, 엄마와 누나는 아무 언질도 없이 민식만 빼놓고 유산을 편의점으로 바꾼 것이었다."  (p.167)


소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여러 고민을 안고서 청파동의 어느 편의점으로 향한다. 민식의 엄마이자 편의점 사장인 염 여사는 자신의 지갑을 찾아주었다는 이유 하나로 서울역 노숙인이었던 '독고' 씨를 편의점 야간 알바생으로 채용한다. 그러나 주변에 편의점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염 여사의 편의점은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상품의 구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까닭에 동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찾게 되는 '불편한 편의점'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사장인 염 여사가 노숙인이었던 '독고' 씨를 채용한 것은 기존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의 걱정과 불안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독고' 씨는 물건을 훔치려는 불량학생이나 다루기 힘든 취객도 능숙하게 다루고, 진상 손님까지 두 손 들고 떠나게 만든다. 이러한 신선한 바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 읽은 여러 심리학 서적에서 인경은 감정적 상처에 대해 주목했다. 캐릭터는 결국 과거의 끔찍한 감정적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가가 그의 앞날이 된다. 독고 씨는 눈을 감았고 등을 돌렸다. 하지만 현재 그는 회복되고 있으며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상처를 돌아볼 용기와 힘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p.156)


편의점은 비싸다며 발길조차 주지 않던 동네 노인들도 '독고' 씨의 싹싹한 태도에 편의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매출도 상승한다. '독고' 씨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변화는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오전 알바를 하던 오 여사는 게임에 빠져 사는 자신의 아들과의 소통 단절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또 다른 알바생 시현은 편의점 초보 알바생을 위해 포스기 다루는 법을 유튜브에 올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늘 혼술을 하던 세일즈맨 경만은 술을 끊고 다시 가장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었으며, '독고' 씨를 쫓ㅇ아내고 편의점을 팔게 하려던 아들 민식은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였고, 마지막 글쓰기 장소로 청파동을 찾은 희곡작가 인경 역시 '독고' 씨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잇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p.252~p.253)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 하나, 소설의 주인공인 '독고' 씨를 통해 당신의 삶도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한결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며, 어깨를 움츠린 채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그들과 소통할 때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음을, 그들의 속내를 알고 나면 비로소 언제나 흐림이었던 하늘이 맑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가장 낮은 신분의 '독고' 씨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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