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어쩌다 보니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대부분을 읽었다. 일부러 작정하고 전작 읽기에 나섰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우연찮게 그리 되었을 뿐인데, 그와 같은 우연도 하나의 경험 축에 드는지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 전반에 익숙하게 되었음은 물론 작가가 다루는 평범하지 않은 연인들(어쩌면 소수자에 가까운)의 삶과 사랑에도 특별한 거부감이나 저항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익숙함이란 언제나 반복에서 비롯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최근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집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에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총 9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1989년에서 2003년 사이에 쓴 작품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2008년 출간되었던 것을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찍어낸 것이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위해 기꺼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어주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러브 미 텐더'를 비롯하여 에쿠니 가오리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선잠'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서부터 작가만의 상상력이 지어낸 듯한 독특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이 단편소설을 읽는 묘미를 더해준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인간과 불량한 인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간.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미치도록 선량을 동경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불량에 이끌리고 그리하여 결국, 선량과 불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평생 선량을 동경하고 불량에 이끌리면서 살아간다." (p.61 '선잠' 중에서)
나는 단편집의 리뷰를 쓰는 일에 몹시 서툴지만 책에 실린 단편소설 '선잠'을 위주로 에쿠니 가오리의 세계를 펼쳐보기로 한다. 대학생인 히나코는 아내가 있는 연인 고스케 씨와 6개월 동안 동거했다. 시인인 고스케 씨는 팔리지도 않는 시집을 두 권이나 냈다고 한다. 아내가 친정에 가 있는 사이 히나코는 고스케 씨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순애보적인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스케 씨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고, 히나코는 이별 파티를 준비한다. 히나코는 알지도 못하던 신문배달원 토오루를 파티에 초대했고, 토오루는 여자 친구 대신 동생인 후유히코와 함께 왔다.
"나는 가 버린 여름을 떠올렸다. 토오루가 있고, 후유히코가 있고, 선잠처럼 혼돈스러웠던 여름. 자동차 운전면허를 딴 여름. 애정을 매장해 준 여름. 해 질 녘 바람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해 질 녘이라는 애매한 시간이 나는 좋다. 주부가 장 보러 가는 시간,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노는 시간, 장밋빛과 회색빛과 연푸른 빛이 한데 섞인 듯한 공기." (p.98 '선잠' 중에서)
고스케 씨와 헤어진 후 히나코는 고등학교 3학년인 토오루와 사귀게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스케 씨를 향해 있다. 고스케 씨의 꿈을 꾸고 고스케 씨의 반려묘가 되어 곁에 있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랑의 열병을 호되게 앓고 난 후 히나코는 용기를 내어 고스케 씨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완전한 이별을 결심한다.
"나는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희미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람이 일순 내 속을 휩쓸고 가 버린 듯한 , 온몸이 텅 비어 버린 듯한 휑뎅그렁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 7월의 달밤 아래 확연히 드러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마치 내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사락사락 거품이 이는 논 한복판에 떨어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p.45 '선잠' 중에서)
우리는 어쩌면 일시적으로 소유했었지만 영원히 가질 수는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을 자신의 사랑을 통해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선잠'의 주인공인 히나코가 유부남인 고스케 씨를 자신의 연인으로 소유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영원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집착이란 다만 습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히나코의 여름처럼 우리도 역시 그런 여름을 통과하고 있을 테지만 히나코의 '선잠'처럼 혼돈스럽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에서 오는 쓸쓸함은 어쩌면 관계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진 허허로움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