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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더러 있었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은 아니지만 푼돈을 투자하여 목돈을 만들었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싸르르 배가 아파왔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하물며 촌수도 없는 무촌이 돈을 벌었다는데 배가 아프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몇십만 원을 투자하여 몇백만 원을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투자 성공담을 들을 때는 그나마 '에이, 그 정도 돈이야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단위가 커져 몇백만 원을 투자하여 몇천만 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을라치면 나의 무능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혈관을 타고 몇 바퀴 순환을 하는 듯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변하기도 하고,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통장의 돈을 뚝 떼어 코인에 투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워낙 간이 작은 탓도 있었지만.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는 마론제과에 다니는 세 명의 회사원이 어찌어찌 코인에 투자하여 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론제과에 다니는 정다해, 강은상, 김지송이 점심식사를 핑계로 늘 붙어다니다가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강은상의 권유로 이더리움에 투자하게 된다는 이야기. 소설의 화자인 정다해를 통해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은근히 우습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에서 한참을 머물게도 한다. 공채 출신이 아니라는 까닭에 그들은 회사 안에서 '근본 없는 애'로 은근한 차별과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이런 까닭에 셋이서 수다를 떠는 온라인 채팅방의 이름도 'B03'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의 장점은 키보드와 모니터만 있으면 어떤 이야기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가 3억 주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첫 장편소설을 구상하면서 '다해와 친구들에게 3억씩 나눠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소설이라 내 마음대로 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p.361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이러한 발칙한 상상 덕분에 소설은 내내 밝은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2017년 1월 17일 ~ 2018년 8월 18일의 약 1년 7개월에 걸친 마론제과 여사원의 일상을 통해 작금의 2030 세대의 현실과 꿈을 가늠케 된다. 그리고 돈만 바라보고 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회사 생활과 직업의 의미를 우연한 행운처럼 다가온 코인 투자의 행복한 결말을 통해 조금씩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젊은이들의 꿈을 완벽히 해결해주는 판타지 소설에 가깝지만 '돈'이라는 필수 아이템을 그들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각자가 추구하는 꿈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며, 돈이 지배하지 않는 그들 각자의 품성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얼마간 걸었을까. 숲길의 모퉁이를 돌면서 나무들의 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무줄기를 따라서 고개를 쭉 들어 올려다봤다. 서로 다른 나무로부터 뻗어 나온 나뭇가지와 그 끝에 달린 나뭇잎들이 모여 그늘을 이루고 잇었는데 서로 닿을 듯 닿지 않으면서도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누군가의 운명이 하늘색으로 적혀 있는 손금 같기도 했다. 그 틈새로 빛살이 갈래갈래 쏟아졌다." (p.22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강은상은 건물주가 되어 회사를 떠나고, 대만에 사는 연하남과 장거리 연애를 하던 김지송은 대만에서 흑당을 수입하는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고, 특별한 계획이 없던 정다해는 좀 더 살기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회사에 남는다.
"최종적으로, 지송이는 2억 4,000만 원을 벌었다. 나는 3억 2,000만 원을 벌었다. 은상 언니는 33억을 벌었다. 내겐 이 모든 게 2017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단 여덟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p.298~p.299)
우리는 어쩌면 물가상승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각자가 원하는 자산 목표액을 증가시켜 왔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능력은 자산 목표액에 비해 한참이나 뒤처진 듯 느껴졌을 테고 말이다. 자신의 능력과 목표로 하는 자산가액의 차에서 오는 괴리로 인해 '나는 왜 요 모양 요 꼴인가' 하는 현타를 수시로 자각하게 되고, 깊은 우울과 자괴감으로 인해 거리를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자신의 꿈이 짜장 현실이 되는 그런 판타지 세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세월을 그렇게 무작정 흘려보내다 보면 하루하루 평범하게 산다는 게 다른 어느 것보다 힘들다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된다. 봄꽃 만발한 주말이면 남들처럼 가족과 함께 운중로를 걸어보기도 하고, 한강변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살다 보면 뻐근하게 느끼는 날이 온다. 돈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그게 뭐 대수인가?' 하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