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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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빚어내는 은유는 그때마다 대상이 되는 인간에게 어떤 깨달음을 안겨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혼의 성숙도에 조금의 흔적을 남기는 건 사실이지 않을까 싶다. 열아홉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엄청난 성공과 폭발적인 인기를 거머쥐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 사강은 그녀의 초기작이었던 <스웨덴의 성>에 등장했던 두 인물을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그녀 나이 서른일곱 살에 다시 소환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두 인물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적는다. 일기처럼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문처럼.

 

"사실 내가 섬기는 유일한 우상, 유일한 신은 시간이다. 오직 시간만이 나에게 심오한 기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이 포플러가 나보다 더 오래 살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대신 이 건초는 나보다 먼저 시들겠지. 나는 집에서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무 밑에서 한 시간 정도는 거뜬히 머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서두르는 것은 굼뜬 것만큼 어리석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과학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단지 운 좋은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나로서는 그것만이 진짜다."  (p.42)

 

소설에 등장하는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는 사강과 비슷한 또래의 스웨덴 출신 이민자이다. 무일푼이었던 그들은 대도시인 파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별한 재능이나 직업이 없었던 그들로서는 그것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자신들의 젊음과 몸이 재산이었던 까닭에 그들이 가진 재산을 후하게 평가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인물을 찾아 끝없이 부유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자신들의 유일한 재산인 육체의 젊음은 서서히 시들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빼앗아가는 것은 뭔가 약하고 소중한 것, 기독교인들이(무신론자들은 다른 말을 사용한다)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영혼을 잘 돌보지 않으면 어느 날 숨이 턱에 차 은총을 구하는 영혼의 상흔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흔은, 분명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p.139)

 

사강은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한편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고뇌, 독자에 대한 진심, 페미니즘의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를 소설 중간중간에 펼쳐 놓는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작가가 쓰는 허구의 소설과 현실에서의 작가 자신의 생각이 교차하는 '소설 에세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는 소설을 쓰던 당시의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예컨대 소설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작가가 창조한 인물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는지 등 출간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나 겨우 들었을 듯한 이야기들을 같은 책에서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설이면 소설, 에세이면 에세이가 한 권의 책으로 엮이는 보편적인 구성과 비교할 때 흐름이 끊기고 가독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로베르 베시는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남아 있던 알약을, 그것도 어렵게 삼켰다. 우연히도 양은 딱 죽을 만큼이었다. 가끔 추리소설에 나오는 표현처럼 그는 자기 자신과 부딪혔다. 삶에 부딪히고 그 삶을 넘어가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꽤 시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승마장에서 멋지고 혈기 왕성한 말이 울타리에 부딪힐 때가 있다. 그때 아예 일어나지 못하거나 일어났더라도 힘겨워하면 수의사가 끝을 내준다. 로베르 베시는 멋지지도 않았고 혈기 왕성하지도 않았으며 수의사도 없었던 셈이다."  (p.171)

 

<슬픔이여 안녕>을 읽어 본 독자라면 느끼겠지만 이 책의 곳곳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진 사강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삶을 관통했던 '솔직함'에 대한 성숙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의 날 선 '솔직함'이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의 삶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드러운 느낌의 '솔직함'이 문장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것은 이른 나이의 부와 성공으로 인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마약, 사랑, 알코올 등 온갖 유혹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인 동시에 '마음에 들어가는 푸른 멍을 외면하는 모두에게' 드리는 경고인 셈이다. 우리는 어쩌면 마음에 들어가는 푸른 멍은 외면한 채 서로에게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흔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한낮 기온이 초여름처럼 높다. 느슨해진 더위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흐드러진 벚꽃 거리를 걷는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초조하게 흐르는 오후의 어느 순간. 영혼에 든 푸른 멍이 하얀 벚꽃에 가려져 봄날처럼 화려하게 빛난다. 행복을 가장한 완성체의 영혼이 봄꽃 흐드러진 거리를 누비고 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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