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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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다분히 시적인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책의 내용 역시 담백하면서도 유려하게 펼쳐진다. 자신의 인생에 펼쳐진 겨울과도 같은 불행 앞에서 작가는 그저 담담하게, 호들갑스럽거나 유난스럽지 않게 수용하고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인생의 겨울'에 들어섰음을 직시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듯한 '인생의 겨울'을 자신의 삶 속으로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겨울의 의미를 깨닫는 것을 작가는 ‘윈터링(wintering)’, 즉 ‘겨울나기’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겨울을 견디며 달갑지 않은 인생의 교훈을 깨닫는 것.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겨울을 아주 담담한 필체로 쓰고 있다.


"그러나 겨울은 죽음이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현대의 안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잡아챌 듯한 추위가 엄습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그 기나긴 밤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그 밤이 가져오는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들이 여전히 실재함을 느낀다. 겨울은 유령들의 계절이다. 그들의 창백한 형태는 밝은 햇살 속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는 다시 선명해진다."  (p.76)


계절의 변화는 이러저러한 작은 징후들, 이를테면 기온이나 습도의 변화, 바람의 세기나 방향의 변화, 낙엽이 지거나 새순이 돋는 것과 같은 자연의 변화 등으로 인해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지만 인생의 겨울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오는 까닭에 순간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작가 역시 남편의 맹장염 수술 이후 자신에게 찾아온 원인불명의 건강문제로 인한 실직, 아이의 등교 거부 등 평온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이 인생에 있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한 작가는 9월 인디언 서머 시즌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나는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회고록 형식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윈터링의 진실이 놓여 있다. 겨울에는 지혜를 얻게 되며, 겨울이 끝나고 나면 누군가에게 그 지혜를 전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먼저 윈터링을 겪은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선물 교환과도 같다. 어쩌면 세대에 걸쳐 이어져온, 평생을 지녀온 타성을 깨는 일이 필요하다. 남들의 불행을 지켜부면서 나라면 절대 취하지 않았을 어떤 방식으로 그들이 스스로 화를 초래했으리라 넘겨짚는 습성은 박정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롭다."  (p.169)


작가는 핀란드인 친구를 만나 겨울을 나는 북유럽인들의 지혜를 듣고 핀란드에 방문하기도 하고, 동화책과 소설 속 배경에 등장하는 겨울의 의미를 자문하기도 하며, 찬물 수영으로 조울증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보기도 하며, 동면을 하는 겨울잠쥐(dormouse)로부터 잠의 의미를 깨우치기도 한다. 겨울의 혹한 속에서 잎을 떨군 채 생명력을 잃은 듯 보이는 나무도 실은 내년 봄을 위한 잎눈을 품고 있음을 새롭게 깨우치기도 한다. 슬기롭게 겨울을 나는 동식물들이 겨울을 거부하거나 겨울에 저항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겨울을 슬기롭게 벗어나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겨울나기를 더 잘하려면 우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수정해야 한다. 우리는 삶이 직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시간은 순환적이다. 물론 우리가 점차 늙어간다는 점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나가는 동안 우리는 건강한 때와 아플 때, 낙관론과 회의론, 자유와 구속의 국면들을 거쳐간다. 모든 것이 쉬워 보일 때가 있다가도,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것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가 언젠가는 과거가 되고, 우리의 미래가 언젠가는 현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p.306)


우리는 때론 생명력이 넘쳐나는 봄과 여름이 끝없이 이어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불변의 전성기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이 있게 마련이고 혹독한 '인생의 겨울'을 단 한 번은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나면 휴식과도 같았던 긴 공백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전에는 없었던 분별력과 혜안을 선물처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혹독한 겨울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인생의 겨울'을 겪는 일이 온전히 그 사람의 불찰이나 부주의 탓인 양 공격하며 그 사람으로부터 등을 돌리려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직 앞을 향한 쉼 없는 전진과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에게도 때로는 후퇴가 필요하고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따뜻한 여름이 가치 있는 만큼 추운 겨울도 그 쓸모가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원리를 외면한 탓에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괴물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사람·동화·자연·여행 등을 통해 자신의 작가의 겨울나기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지금 '인생의 겨울'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그리고 언제가 닥쳐올지도 모르는 '인생의 겨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용기와 신념을 귀한 선물처럼 건넨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언젠가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겨울을 작가처럼 아주 담담하게, 이전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줄 날이 오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누구에게나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인생의 겨울이었지만. 그것이 크든 혹은 작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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