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기력의 밑바탕에는 말할 수 없이 깊은 공허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종종 간과하곤 한다. 이를테면 저따위를 해서 뭘 하나? 하는 심리는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행동을 가로막고 종국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다. 무기력은 아마도 벗어나기 힘든 늪이나 수렁과 같아서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벗어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기력의 늪에 빠진 누군가를 구조할 때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늪의 주변만 빙빙 맴돌면서 왜 빠져나오지 않느냐는 타박만 늘어놓을 뿐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최선을 다해 구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이는 찾기 어렵다.

 

"나는 쾌감이 전혀 없지도 않은 채 그냥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결국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나 다 어디엔가로 인도하게 마련이다. 오직 그것에만 아무런 출구가 없었다. 설사 그 상태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삶 자체가 어찌나 죽음과 흡사한 것이었는지 그 차이를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동물도 죽을 때는 본능적으로 경련하는 법이라지만."  (p.30)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수필집 『섬』은 일반 독자들보다는 작가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추론은 대개 작가들의 추천 도서 목록에 오르는 횟수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일반 독자들이 『섬』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에서 리뷰를 쓰거나 『섬』을 자신이 추천하는 도서로 지인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장 그리니에의 『섬』이 갖는 특성, 이를테면 작가의 깊은 사색과 정제된 문장에서 오는 생각할 거리가 일반 독자들보다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들에게 훨씬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p.64)

 

프랑스 알제 대학교의 철학교수를 지내면서 많은 명상적인 에세이를 남겼던 장 그르니에. 『섬』이 세계적인 문호 알베르 카뮈에게 영감을 주고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다른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앞으로도 꾸준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어오며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결론이라는 게 사실 어떤 객관적 근거에 기반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나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만 말이다. 결론인 즉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에 실린 글의 대부분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쓰지 않았던 것은 물론 오랜 시간을 두고 쓰고 또 고치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게 아니라 글의 윤곽이 떠오른 어느 날 단숨에 써내려갔을 것이라는 추측,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는 글은 하루에 한두 문장씩 긴 시간의 사투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사색의 결과를 일필휘지로 단숨에 써내려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저 형언할 길 없는 과거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맹목적이고 엄청난 힘들로부터 헤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인식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무(無)에 대한 섬뜩함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정신적인 생활을 하게 된 셈이지만 그것은 실상은 거꾸로 된 정신적 생활이었다. 저 성벽처럼 쌓인 책들 속에는 얼마나 대단한 매혹이 깃들여 있었던가! 그러나 도서관 밖을 나설 때면 머리가 아팠고 마음은 더욱 메말라가는 듯 느껴졌다."  (p.120~p.121)

 

고백하자면 나 역시 사색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 중 한 명인 까닭에 200쪽도 되지 않는 이 책을 그저 눈으로만 서너 차례 읽었을 뿐 가슴으로 읽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책에 대한 느낌이나 어설픈 리뷰를 써보자 결심했던 것도 최근의 일이고 보니 책에서 장 그르니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어서 리뷰를 쓰면서도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그저 겉도는 이야기만 쓸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멀찌기서 바라볼 뿐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들지 않는 점은 그르니에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미숙한 독자임을 밝히는 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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