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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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딱히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던 말도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는 더없이 훌륭한 의미로 전해질 때가 있다. 사람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능력이 달라지는 것처럼 하찮아 보이는 말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진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명언이란 적절한 상황에서 발견되는 것일 뿐이지 지식이 많은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걸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어린이의 입에서 어른도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천금 같은 명언을 이따금 듣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하나하나 복기할 수도 없고, 자신이나 주변 인물들의 말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도 없는 우리는 '그 말 참 명언이었어'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다양한 삶의 장면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장르에서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명언들을 너무도 쉽게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대본을 쓴 천재적인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들도 역시 자신의 삶에서 명언을 찾아가는 '명언 발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줄곧 그들이 발견한 빛나는 명언들을 영화 곳곳에서 새롭게 발견해가는 것이다. 마치 숨겨진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처럼...

 

"소설에 명문장이 숨어 있듯, 영화에도 명대사가 있습니다. 때로는 감정에 푹 빠지게 되고 때로는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명대사, 명언 말입니다."  (p.5 'prologue'중에서)

 

책에 등장하는 영화 중에는 아주 오래전 청소년기에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영화도 있고, 젊은 피가 끓던 청춘 시절에 어두운 영화관의 뒷좌석에서 보았던 영화도 있고, 쓸쓸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어느 가을날 홀로 찾았던 어느 작은 영화관의 추억이 묻은 영화도 있고, 어린 자식을 잠시 누군가에게 맡기고 휴식 같은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찾았던 집 주변의 오래된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도 있을 터이다. 혹은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해 보았던 영화일 수도 있다. 경로야 어떠하든 간에 영화의 감동과 명대사가 전해주는 묵직한 삶의 의미를 우리는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언뜻 보면 단순한 액션과 총격전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관객들에게 스릴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우연히 돈가방을 손에 넣게 된 주인공과 그를 찾는 살인마, 그리고 이들의 뒤를 쫓는 보안관의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던져지는 의미심장한 장면과 대사들을 유심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266 그러니 다음 수순은 뻔하지? 삶에 미련을 버려. 모양새 나빠지지 않게. And you know what's going to happen now, Carson? You should admit your situation. There would be more dignity in it."  (p.102~p.103)

 

저자는 책의 구성에 있어 Part 1. '꿈과 자유를 찾아주는 명대사', Part 2. '사랑이 싹트는 로맨틱 명대사', Part 3. '인문학적 통찰력을 길러주는 명대사', Part 4. '사랑의 심리를 파고드는 명대사', Part 5. '지친 마음을 힐링해 주는 명대사', Part 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명대사', Part 7.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명대사', Part 8. '내 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명대사'의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그에 걸맞은 영화를 선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분도 저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러한 구분에 상관없이 저자가 고른 영화와 함께 추억의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영화 속 명대사로 인해 그 시절의 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768 너도 알듯이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그때 술 한 잔 하자고 하려던 참이었어. Someday, this is all holding to end, you know. I was going to say we'll have a drink then."  (p.268 영화 '쉰들러 리스트' 중에서)

 

영화는 잊고 지내던 삶의 한 장면을, 허물어진 관계의 옛 구조물을 고스란히 옮겨 놓음으로써 영상 속에서 우리의 추억을 되살린다. 한 편의 영화를 재탕, 삼탕 다시 보아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재현되는 추억의 장면들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다른 추억을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의 지난 삶을 되돌리면서 앞으로의 삶을 뿌리부터 통째로 흔들어놓는 것이다.

 

"005 카르페 디엠, 매 순간 즐기며 살아라. 너희만의 특별한 삶을 살아라. Carpe Diem,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p.17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건 자신의 지난 삶을 압축적으로 톺아본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슴에 새겨지는 명대사를 만나기도 하고, 주인공의 슬픈 눈망울을 평생 기억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추억을 영상에 담기 위해 오늘도 영화 보기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건 자신의 과거를 톺아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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