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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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버거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아니라고 우겨도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자식을 낳기 위한 생물학적 결합일 뿐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논리를 들어 결혼에 이르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그렇게 복잡다단한 이유들을 충족해야만 비로소 성사되는 고난도 방탈출 게임과 같은 것이기에 성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성취감은 높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작되는 상대방의 내면을 캐는 초고난도 방탈출 게임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다.

 

"나에게 결혼생활이란 무엇보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사는 일'이다. 생활 패턴, 식성, 취향, 습관과 버릇, 더위와 추위에 대한 민감한 정도, 여행 방식, 하물며 성적 기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렇게 나와 다를 수 있지?'를 발견하는 나날이었다. 나중에 이 질문은 점차 '이토록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어째서 이렇게 오래 같이 살 수가 있지?'로 변해갔지만."  (p.8)

 

임경선 작가의 산문집 <평범한 결혼생활>은 기혼자라면 누구나(라면 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문구로 시작하여 서로의 '다름'과 '맞지 않음'에 대한 결론도 나지 않을 난상토론으로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체념이나 포기를 가장한 '자세 낮춤' 혹은 오지 않은 미래의 '죽음'과 결부 지어 어정쩡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구성은 기혼자들 대부분이 겪는 일반적인 삶의 형태라고 보아도 무방할 테지만 작가는 자신만이 겪는 특수한 형태의 결혼생활임을 번번이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다른 부부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일 수도 있고,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당신들도 실망하거나 위축될 것 없다는 식의 색다른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와 내가 한날한시에 죽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적을 터이니 남편과 나, 둘 중 누군가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남겨진 사람은 남은 삶을 사는 동안 떠나간 사람과 함께 보아온 숱한 풍경들을 플래시백처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미지는 모호하고 순서는 뒤죽박죽, 심지어 세부사항은 왜곡된 채로. 그렇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풍경을 참 많이 보았다'라는 실감만은 그저 기분 탓이 아닌, 분명한 사실로 남을 것이다."  (p.129)

 

여담이지만 내가 임경선 작가를 눈여겨보게 된 시초는 작가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하루키 작품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읽는 나의 '하루키 덕질'에 비해 하루키에 대한 작가의 애착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열정 때문이었을까 작가는 2001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만난 지 3주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세 달 만에 부부가 돼서 20년간 함께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그에 부합하는 사연은 책의 중간에 삽입된 청첩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네 페이지에 걸친 이들의 교환일기 같은 청첩장은, 처음 만난 날부터 사랑에 빠진 순간까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연애 시절의 불같던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 결혼생활은 가끔씩 있는 이벤트가 아닌 피할 수 없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서너 번 스치듯 만나는 게 결혼생활이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항상 애틋하고 그리운 존재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은 채.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민을 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우리는 연애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습관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기도 하고, 그런 습관들 중 어떤 것에는 익숙해지고, 또 다른 어떤 것에는 죽을 때까지 치를 떨기도 하는 법이다.

 

"결혼 초기엔 남편과 밤새워 싸우며 맞담배를 꽤 많이 피웠다. 둘 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어설프게 전공한 탓인지 우리의 싸움은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몸싸움을 하기보단 부엌 테이블에 마주앉아 꼬장꼬장 질겅질겅 서로의 말꼬리를 붙잡는 양상을 띠었다. 답이 없는(부부 싸움은 대개가 답이 없다) 300분 토론이 끝이 나면 옆의 재떨이는 신경질적으로 비벼 끈 담배꽁초들로 수북했다."  (p.103)

 

이와 같은 글을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녀가 작가라는 직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혼생활이란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렇고 그런 일상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까닭에 무한반복의 일상을 통해 서로의 '다름' 속에서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한다. 산 정상을 향해 의미도 없이 돌덩어리를 굴리는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결혼생활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결코 정복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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