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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 - 걱정인형처럼 내 고민을 털어놓는 책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2월
평점 :
전 세계 유명인들의 명언만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명언집은 지금도 이따금 펼쳐 읽는 책이지만, 명언집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명언이 '부르투스 너마저?'이다. 우습게도 말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기 전,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친구 부르투스까지 배반에 가담한 사실을 알고 했던 절규다. 다들 잘 아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책에서 처음 읽었던 시기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중학생이 되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니 카이사르(당시에는 씨저라고 했었음)가 누구인지, 그가 했던 말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인지 당시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고, 나는 그저 잘난 체하려는 목적으로 명언집에서 읽었던 몇몇 유명인들의 명언을 배경 지식도 없이 외웠던 것이다. 그때 외웠던 명언 중에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인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명언을 비롯하여 일일이 다 옮기지 못할 정도로 많았었다.
얕은 지식으로 잘난 체하기 위한 암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子曰, 僞善者 天報之以福(위선자 천보지이복), 爲不善者 天報之以禍(위불선 천보지이화)로 시작되는 명심보감을 그 시기에 하라는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모두 다 외웠다. 명언집이 서양 유명인들의 명언이었다면 명심보감은 내게 동양 유명인의 명언집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촉한의 소열 황제가 누구인지, 후한 시대의 마원(馬援) 장군이 어떤 일을 하였는지 그 당시의 나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책이 귀하던 시절에 집집마다 명언집 한두 권쯤 소장할 수 있었던 까닭도 나와 같은 목적이 아니었을까. 책값이 비싸니 생각날 때마다 책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명언집 한두 권만 읽어도 남에게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체념이다. 대개 이와 같은 생각은 과거의 어떤 실패로 인하여 현재의 자기 위치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되라고 하고 내던져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학대다. 적극적인 체념은 언제나 어제의 실패를 오늘의 출발점으로 삼는 법이다. -버트랜드 러셀" (p.16)
이서희의 <마법의 명언>은 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명언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책이다. 그리고 내가 자주 찾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만났던 지인 한 분을 떠올리게 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분은 자신이 읽은 책의 핵심이 되는 문장을 언제나 자신의 노트에 옮겨 적곤 했는데 그렇게 쓴 노트만 수십 권이라고 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자신의 노트를 훑어보다가 그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다른 노트에 다시 옮겨 적곤 하셨다. 그렇게 몇 번에 걸쳐 신중하게 가려 뽑은 책 속 문장들을 서너 권의 노트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모 은행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셨다는 그분은 정년퇴임을 한 후에 소일 삼아 자신의 명언집을 만들고 있었던 것인데, 정작 유산을 물려받게 될 그분의 아들은 그 노트에 도통 관심이 없다며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한순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친구가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늘 함께했던 이와의 이별은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늘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오스카 와일드, 「잠언집」 中" (p.203)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여러 고민들을 200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고민을 해결해줬던 명언들을 고민과 함께 붙여 넣음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들이 지금 겪을지도 모르는 여러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예컨대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명언 4가지', '자꾸만 뒤처진다고 느껴질 때 보면 좋은 명언 3가지' 등으로 아주 구체적인 고민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앞질러 가는 사람이 자꾸 눈에 뜨일 때는 뒤에 오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감사하고 싶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앞질러 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타인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 자신이 과거의 당신을 앞질러 온 것입니다. -세네카" (p.128)
살다 보면 누구나 풀 수 없는 인생의 고민에 봉착하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조언을 간절히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단지 먼저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꼰대'라는 누명을 쓰기 십상이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고민들이 쌓여만 갈 때, <마법의 명언>을 곁에 놓고 펼쳐본다면 어쩌면 우리의 고민도 마법처럼 풀릴지도 모르겠다. 한 권의 책이 필요한 것도 그런 순간이다. 어린 시절 내가 제대로 된 의미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외웠던 명언들을 나는 인생의 반을 살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다. 그때 외웠던 명언들이 나의 영혼에 자양분이 되어 인생의 고비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