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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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것도 누군가의 강요나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라면 더더구나. 그럼에도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사례가 종종 있게 마련이고, 나는 그와 같은 것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을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철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어떤 체념이나 무기력의 발로에서 나온 행위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동시에 여러 생각들이 두서도 없이 교차하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홍승은 작가의 산문집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역시 그런 부류의 책이었다. 저자의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마냥 박수를 치고 있을 수는 없었던...

 

"나는 우리를 폴리아모리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이상한(queer) 관계라고 말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폴리아모리'를 입력하면 무수한 분노를 마주할 수 있다. 난교, 바람, 악의 세력, 타락의 끝, 소돔과 고모라, 그런 단어들을 마주 보고 있으면 불현듯 나와 내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다정한 아침 인사와 밤 인사, 하루를 채우는 반짝이는 대화와 고만고만한 갈등,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p.10~p.11 '프롤로그' 중에서)

 

'비독점적 다자 사랑'을 뜻하는 '폴리아모리'는 용어 자체도 생경하지만 현실적 차원에서의 실현 불가능성에 더 주목하게 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류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그들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이상한(queer) 존재인 것이다. "두 애인과 산다는 게 말이 돼? 야동도 아니고..." 하면서 야릇한 상상을 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볼 게 틀림없다. 세상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정작 가슴으로 그들을 품고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폴리아모리가 얼마나 납작하게 인식되는지 수시로 부딪히고 있다. 어떤 이는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은 폴리아모리를 안 좋게 생각하고, 그건 존중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그에게 굳이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손쉽게 관계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태도가 불쾌하다."  (p.150)

 

얼마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후보로 나선 한 정치인이 TV토론에서 했던 말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경쟁 후보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예로 들면서 "그곳은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남부에서 열린다."며 "그런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나라의 퀴어 축제가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보통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외곽 지역에서 개최할 것과 '안 볼 권리'를 주장한 것이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개개인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문제이지만 자신의 관점을 타인에게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구분하고 그들이 다수의 시선에서 멀어지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이 책은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1. '의외로 평범합니다', 2. '내 사랑이 불편한가요', 3. '서로에게 무해한 방향으로'의 세 개 챕터로 구성된 이 책에서 작가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 검열 없이 자신의 과거나 현재 모습을 비교적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이 높아진 데서 오는 바람직한 성장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자포자기의 심정일지도 모른다.

 

"헛짓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던 아빠가 이제는 폴리아모리를 이해하고, 세상에는 함부로 손가락질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자신은 원래 군인보다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다면서, 지난 행동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빠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헤아려보는 한편, 그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p.226)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세 사람(승은, 우주, 지민)이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한집에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에서의 분투와 좌충우돌을 생생하게 담아낸 책이지만 일반 독자들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읽게 된 걸까. 이 책에 쏟아진 관심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나와 다른 방식의 사랑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일 수도 있고, 다양한 삶의 유형에 대한 열린 사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식 체계는 각자가 습득한 경험치 내에서 작동하며, 그 영역 밖의 존재를 폭넓게 이해하고 포용하기에는 우리의 품이 너무 좁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내 품의 한계를 인식하며 이 책을 읽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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