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말공부 - 말투 하나로 적을 만들지 않는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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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폭력적인 생각은 폭력적인 언어로 발현되며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급기야 폭력적인 행동으로 발전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생각의 자유는 물론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체계에서 자신의 폭력적인 생각을 단순히 폭력적인 언어로 표현하였다고 해서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법적 처벌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폭력적인 언어 사용을 강제적으로 불허하거나 교정을 강제할 만한 특별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폭력적인 언어가 어느 한 사람에게 특정됨으로써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주었다는 이유로 법적 처벌을 받는 예외적인 경우가 드물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단순히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개인의 자유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적인 상황을 사회적으로 관대하게 허용하는 이와 같은 현실이 최근 불거진 배구계의 학폭 이슈의 발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음은 내가 하는 말로 드러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말하는 방식을 바꾸면 마음도 태도도 달라진다. 또한 말투가 달라지면 경직되었던 인간관계도 훨씬 유연해지고 안정된다."  (p.8 '머리말' 중에서)

 

온라인 상에서의 넘쳐나는 폭력적인 언어는 이미 그 한계선을 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의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처벌이나 교정을 강구하는 쪽으로의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일베나 워마드와 같은 극단적 사이트는 상시 폭력적 언어로 도배가 되곤 하지만 사이트의 폐쇄와 같은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더구나 유튜브의 조회수가 곧 돈으로 직결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전보다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어의 사용은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성장기의 아이들이 폭력적인 언어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이런 현실에서 '선플 달기' 운동이나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자는 운동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점점 대담하고 흉포화 하는 청소년의 폭력 범죄를 걱정하면서도 말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게 사실이다.

 

"무언가를 사과하는 상황에서는 '미안하게 생각하느냐 아니냐'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반대로 말하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느끼면 의외로 쉽게 용서한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경우가 그렇다. 가령 피해자가 "이게 사과만으로 용서받을 일이야!" 하고 계속 화를 내더라도 주위에서 "상대방도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니 이쯤에서 받아주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잖아."라며 거들어주기도 한다."  (p.79)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이자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사이토 다카시의 신작 <어른의 말공부>는 사실 성인, 특히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의 말투와 언어 사용에 집중된 책이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일과 관계가 술술 풀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움을 받고 오해를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바로 말투에서 비롯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말 습관을 바꿈으로써 갈등을 피하고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침착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객관적인 언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는 말에 주의하자. 예를 들면 ‘애당초’, ‘원래가 말이야’ 등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방은 ‘또 설교 모드에 돌입했군’ 하고 마음을 닫는다. 자신의 의견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을 것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답지 않다'는 것은 비난을 암시하는 말투다. '너답지 않다'는 말은 언뜻 상대를 인정하는 것 같지만 눈가림일 뿐이다. 내면에는 '네 주제를 잘 알아야지!'라는 감정이 담겨 있다. ‘○○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친절한 표현은 실상은 강요다. 마치 상대방을 위한 것처럼 꾸미지만 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강요하는 경우에 흔히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계속 말해봐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옛날부터 위한답시고 하는 말은 경계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면 말에 말을 더하기보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p.197~p.198)

 

오랜 시간 굳어진 한 사람의 언어 습관은 그 사람의 품격이나 인성으로 말해지곤 한다. 스포츠계의 학교 폭력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발단의 근저에는 폭력적 언어의 사용을 막거나 순화시키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것이다. 폭력적 언어 사용을 뻔히 보면서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웃어넘기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까닭은 어른들 역시 폭력적 언어 사용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정치인이 다르다는 단순한 이유로 상대방을 적으로 돌리고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깔아뭉개려 하는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와 같은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몇몇 사람들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내 탓이오!'라는 회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질 때 학교 폭력은 조금쯤 설 자리를 잃고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폭력적 언어가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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