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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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남과 구별되려 애쓰거나 그렇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그러한 노력은 평생 동안 이어진다. 조금 더 부풀리자면 인간은 남과 구별되기 위한 목적으로 전 인생을 소모하는지도 모른다. 타인과 구별되기 위한 그와 같은 끊임없는 노력 중 가장 호사스럽거나 가장 사치스러운 것은 아마도 '집'이 아닐까 싶다. 어디에 살며, 주거 면적이 몇 평이냐에서부터 자가인지 전세인지, 혹은 월세인지를 따지는 문제의 이면에는 '나는 너와 다르다.'는 뿌리 깊은 차별성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번듯한 자기 집 한 채를 갖는다는 건 목숨과 견주어도 하나 아깝지 않은 가치를 지니는 듯 여겨진다. 말하자면 집은 자신의 정채성이 담긴 또 다른 물성을 지녔음이다.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p.135)

 

 

하재영 작가가 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여러 집들에 대한 회상인 동시에 그 집에 담긴 삶의 이력이다. 하재영 작가에 대해 딱히 아는 게 없었던 내가 고민하지 않고 책을 구매하여 읽게 된 배경에는 입소문이 한몫했다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나는 책의 내용에 대해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기대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말이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시절의 집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덧입힌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구의 적산가옥촌, '대구의 강남'으로 불렸던 수성구의 고급 빌라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던 기억들. 20대 서울 상경 후 살았던 강북의 아홉 개 방과 신림동의 원룸, 재개발에 비껴간 금호다가구주택, 30대 진정한 독립을 이룬 행신동 투룸, 정발산의 신혼집, 북한산 자락 아래 구기에서 오래된 빌라를 수리하고 안착하는 내용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작가와 함께 했던 반려견 피피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눈을 뜰 때마다 상실을 깨닫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밖을 보다가, 밥을 먹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심지어 잠에서 깨자마자 난데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나보낸 것은 개 한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한 내 삶의 한 시절이었다. 가끔 피피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돌아오지 않을 한 시절을 부르는 일이었다."  (p.175)

 

 

그럴지도 모른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어떤 집을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지나간 한 시절을 간절히 불러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사를 반복하는 동안 나이가 들었고, 그렇게 나이가 드는 과정에서 작가는 아빠와 벌어졌던 틈도, 엄마에 대한 연민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월이라는 둥근 집에 기거하는 모든 인류의 깨달음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발걸음.

 

 

"이 책은 집이 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보려는 어설픈 시도이기도 했다. 이 시도를 통해 나의 이야기가 타자의 이야기가 되고, 타자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연결성을 소망했다. 사적 경험만이 아닌, 한 시대를 공유하며 성장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반성과 보편성을 담고 싶었다."  (p.218 '작가의 말' 중에서)

 

 

1월의 날씨라고는 믿기 힘든, 봄날처럼 따뜻한 하루였다. 사람들은 옷에 묻은 코로나 시대의 낡은 집 냄새를 털어내려는 듯 가족들의 손을 잡고 가까운 공원으로 쏟아져 나왔다. 햇살은 부드러웠고, 가벼운 햇살 속으로 아이들의 부푼 웃음소리가 하늘 높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집. 이벤트와 같았던 산책을 마치면 그래, 집으로 가야지. 언제나 그랬듯 거실에는 텔레비전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일 테고 저녁 밥상엔 하루의 일과가 푸짐한 반찬처럼 올려지겠지. 누구에게나 집은 그들만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이는 공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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