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
김지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세월의 변화를 부지런히 따라잡는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한참이나 뒤처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한 번 벌어진 간격은 갈수록 그 격차를 넓혀갈 뿐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유행이나 기술의 변화를 쉽게 좁혀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단지 머릿속 생각으로만 그칠 뿐이다. 실생활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따라잡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부적인 변화에서 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이념 같은 내부적인 것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외부적인 것은 그럭저럭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낼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킨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계속해서 '꼰대' 소리를 들으면서도 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건 '연애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런 변화의 이면에는 여성 인권의 성장과 맞물려 연애에 있어 항상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던 여성들의 생각을 180도 뒤바꿔 놓은 측면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변화의 주체인 여성에게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주도권을 잃게 된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로를 알게 된다. 설렌다. 만난다. 밥을 먹는다. 얘기를 조금 한다. 차를 마신다. 모텔에 간다. 엉킨다. 영화를 본다. 집에 간다. 열라 톡을 한다. 보고 싶다. 꿈에서도 보고 싶다. 만난다. 술을 마신다. 싸운다. 화해한다. 사랑한다. 영화를 본다. 집에 간다. 만난다. 조금 걷는다. 밥을 먹는다. 드라이브를 한다. 모텔에 간다. 집에 간다. 만난다. 시간이 흐른다. 왜 하는지 모르는 섹스를 한다. 할 일이 없다. 할 말이 없다. 지루하다. 다 그런 거지 생각한다. 이별한다. 왜 헤어진 줄 모른다. 사랑의 상처는 다른 사랑으로 치유하는 것이라며 친구가 소개팅을 물어온다." (p.43)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이자 방송인이기도 한 김지윤의 저서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확 달라진 요즘 연애의 풍경에 새삼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거 레알? 에이, 설마...' 하면서 반신반의하거나 '세상 말세로구나!' 낙담하면서 오호통재를 외치신 분이라면 '꼰대 중증 증후군'으로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괄목상대를 넘어 천지개벽의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건 이와 같은 변화를 모른 척 지나쳤던 자신의 꿋꿋한 꼰대 기질뿐이었다. 무관심일 수도 있고, 자신의 잣대만 바라보며 못마땅한 변화를 애써 외면하려 '에헴!' 하던 헛기침 탓일 수도 있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요트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장면이 아니라 개펄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장면이 더 잘 어울리는 '체험 삶의 현장'이 바로 결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식과 웨딩드레스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산에 오를 때는 등산복을 입고, 노동을 할 때는 작업복을 입고, 파티에 갈 때는 꽃단장을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에는 웨딩드레스보다 작업복이 어울리고, 시중 없이는 혼자 움직이기도 힘들게 거추장스럽고 아름답기만 한 웨딩드레스는 문제가 많다." (p.206)
저자는 간결하고 톡톡 튀는 문체로 세상이 달라졌음을 설파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를 보충한다. 그리고 요즘 연애의 부족한 점 혹은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싫으면 싫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화가 나면 화난다고 적극적으로 말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쾌락만 추구하는 감각적인 연애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관계를 다질 것을 주문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답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혹시 나는 왜 좀 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좀 더 강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눈물 많고 탈도 많을까 자책하며 살아오셨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 감정적이고 눈물 많고 오지랖 넓은 당신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 필요한 존재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소중하다." (p.309)
어쩌다 보니 기성세대가 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연애에도 무슨 상담이 필요하냐?'며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연애에는 좋은 연애도 있고 나쁜 연애도 있다는 생각에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 연애는 그저 경험하는 것일 뿐 거기에 무슨 좋고 나쁨의 가치 평가가 존재할 수 있으며, 남녀가 만나 좋으면 결혼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한평생 가는 것이지 돌다리를 두들기듯 이것저것 따져서 좋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다분히 운명론적인 연애관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애에 대한 경험은 늘었지만 그에 대한 사색이 부족한 시대에 사는 요즘의 젊은이들. 저자의 연애 상담은 다분히 과거지향적으로 읽힌다. 연애마저 유선생(유튜브)에게 의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고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책을 읽으라고 덧붙이기에는 너무 꼰대스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