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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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편지만큼 유용한 것도 없었다. 발송 비용도 저렴한 데다 편지지의 매수 제한도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난한 청춘들에게 편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매체였다. 편지를 통하여 서로의 애달픈 심정을 구구절절 써서 보내기도 했고, 거절의 답신을 어렵게 풀어 보내기도 했다. 그것은 비단 청춘들의 전유물은 아니어서 도시로 유학을 떠난 자식의 안부를 묻는 통로이기도 했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식들의 따스한 온기이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지에 얽힌 추억 한두 개쯤은 마음 한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터,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역시 추억처럼 술술 읽히지 않을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고, 고민에 빠져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대필가라기보다는 마치 인생 상담원 같았다. 내게 의뢰할 내용을 설명하면서 화를 내거나 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p.136)

 

2000년대 이전에 군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편지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휴가나 외출이 아니고서는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었던 그 시절에 편지는 그야말로 달짝지근한 사제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보안검열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 하에서도 애인의 편지나 부모님의 편지를 소각하지 않은 채 관물대 옷가지 속에 감추거나 야전잠바 주머니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휘영청 달이 밝은 날 초소 근무를 설 때, 닳아 헤진 편지를 희미한 달빛에 비춰가며 읽고 또 읽곤 했었다.

 

"실은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쿠도 씨가 말했어.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흐르는 건 사람이고,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멈춰 있는 거라고. 자신은 그 시간을 그저 물을 긷듯 사진기로 퍼올리는 것뿐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난 점점 어딘가로 떨어져 갔어. 이 경험이 뭔지에 대해 생각했어. 기치조오지의 부티크에서 일하던 땐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경험."  (p.168)

 

책에는 소설가로 등단하였지만 소설은 쓰지 않고 기치조오지에서 다른 이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적절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셈인데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일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이에 일조를 했던 것은 주인공이 자주 찾는 레오나르도 카페의 사장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 힘이 컸다. 편지를 의뢰한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무실 남자 사원의 구애를 기분 나쁘지 않게 거부하는 편지, 단 한 번도 사랑 고백을 해보지 못한 남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65년의 결혼 생활을 해온 어느 노부인이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며 찾아온 속사정, 한 여인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그 여자의 연인을 살해한 후 출소 후 여인에게 보내는 사죄의 편지 등 우리의 일상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들이 편지와 함께 펼쳐진다. 게다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죽은 손자를 대신해 거짓 편지를 쓰는 장면은 왠지 모를 먹먹함을 안겨 주었다. 오직 편지에서만 받을 수 있는 진한 감동이 그 한 장면에 집중된 것처럼.

 

"의사인 친구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병실을 장식하는 그림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 그림이 아니라 뭘 그린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추상화 쪽이 좋다고. 그림에 담긴 뜻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환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나아가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편지를 기다리는 행위에는 살아갈 희망이 잠재되어 있다."  (p.187)

 

나도 군 복무를 하던 시기에 대필을 해준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선임의 협박에 굴복하여 연애편지를 대신 썼던 것은 아니고, 같은 내무반의 후임 병사의 사정이 하도 딱해서 어쩔 수 없이 팔을 걷어붙였던 것인데 사정인 즉 이러했다. 후임 병사에게는 매주 거르지 않고 면회를 오는 애인이 있었는데 첫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후부터 더 이상 그 애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후임병은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매사에 의욕을 잃고 허물어져 갔다. 근무하는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행정병이었던 나로서는 후임병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어느 날 저녁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고, 그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쓰기에 이르렀다. 컴퓨터도 없던 당시에 나는 업무가 끝난 후 야간에 홀로 사무실에 남아 타자기로 타이핑을 한 후 봉투에 담아 후임병의 이름을 써서 보냈고, 편지가 도착한 그 주 주말에 후임병의 애인이 면회를 온 걸 목격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를 했고, 그 후의 뒷얘기는 알지 못하지만 한 통의 편지가 펼쳐 보여주었던 기적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소박한 것에서 기적의 순간을 목격하기도 한다. 편지에는 어쩌면 서로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영혼이 아날로그 필름처럼 찍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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