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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오니즘 - 셀트리온은 어떻게 일하는가
전예진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셀트리온이라는 회사명은 알고 있었지만 그 회사의 회장이 누구인지, 창립 배경은 어떠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혹은 앞으로의 전망이나 비전은 어떠한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따금 주식 종목을 검색하면서 회사명과 더불어 업종과 재무제표를 대충 훑어보았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셀트리온'은 수많은 상장기업 중 하나에 불과했었고, 특별한 관심이나 애착의 끈을 맺을 만한 계기도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셀트리온'과 '서정진 회장'이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던 건 지난달 말 TBS 교통방송에 출연한 서정진 회장의 인터뷰가 결정적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가 했던 말들 중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지만 그중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한국인이었고 한국인들하고 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그의 다짐이었다.
" 원래 이렇게 팬데믹이 돌면 자국 기업은 국가의 공공재가 돼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물론 내가 우리 회사의 총수지만, 자국 기업들은 국가의 공공재 역할을 해 줘야 되는 거예요."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책무를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회사가 생산한 치료제를 국내에서는 원가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수의 몇몇 메이저 언론사도 아닌, 작은 언론사의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중견 기업의 회장이 직접 출연한 것도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한 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공감을 넘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는 시간을 내어 오창에 있는 셀트리온 제약 본사와 진천에 있는 셀트리온 제약 공장을 다녀왔고, 최근 출간된 <셀트리오니즘: 셀트리온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구매하였다. 한국경제신문의 전예진 기자가 쓴 이 책은 '서정진과 임직원들이 지난 20년간 구축해온 문화와 성공의 핵심'을 다루고 있으며, 저자는 그것을 '셀트리오니즘'이라고 이름 붙였다.
"셀트리오니즘은 철저하게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며 이렇게 창출한 부가가치를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셀트리온의 전 사업 영역과 밸류체인(가치사슬)에 적용된다. 셀트리온은 기존 의약품보다 낮은 가격으로 출시할 수 있는 제품만 개발했고 임상시험에서 불필요한 단계를 없애 시간과 비용을 단축했으며 자체 공장의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췄다. 판매 마케팅에도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했다. 셀트리온의 해외영업 인력은 경쟁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셀트리온은 판매 대행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해외 직접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셀트리온이 하려는 일은 전부 '줄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p.18~p19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본문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다. 1.'내일', 2.'시작', 3.'도전', 4.'고난', 5.'변화', 6.'도약', 7.'원칙'이 그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서정진의 성장배경'이 간략하게 보강되어 책은 본문 이외에 읽을거리가 조금 더 늘어났지만 책의 내용은 주로 K-바이오의 선두주자였던 셀트리온의 창립과 성장 과정을 기술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비전과 그들만의 문화와 원칙을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기자에 의해 기술된 책이기에 사실의 나열에 의한 딱딱하고 읽기 힘든 책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마치 한 기업의 성장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성공담 혹은 '셀트리온'이라는 거함에 올라탄 크루(crew)들의 분투기로 읽힌다. 결국 모든 성공과 실패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직원을 부리는 사장이 아니라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발로 뛰는 사장을 직원들은 미워할 수가 없다. 셀트리온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면 이들이 근로계약서 한 장으로 맺어진 찢어지기 쉬운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창업자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을 뭉치게 하는 뜨거운 무언가가 셀트리온에는 있다." (p.362)
셀트리온은 IMF 경제위기로 실업자가 된 서정진과 대우자동차에서 함께 일한 동료 6명이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일군 기업이다. 미국 백신 개발사 백스젠을 설득해 합작회사인 셀트리온을 설립하였으나 에이즈 백신이 실패하면서 회사는 파산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나는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그들의 좌절과 도전의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실패와 험난한 좌절의 골짜기를 헤쳐 나오는 과정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실패는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의 창업 현실에서 그들이 헤쳐왔을 가시밭길의 과정은 책에서 언급하는 몇 페이지 분량으로는 도저히 다 담아낼 수 없는,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참담한 이야기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비록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서정진은 아내에게 출근한다고 말하고 경기도 양평 양수리로 갔다. 차를 몰고 강으로 돌진해 빠져 죽으려는 심산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서정진은 양수리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점심을 시켰다. "메뉴를 네다섯 개 시키니 종업원이 다 먹지도 못할 텐데 많이 시킨다고 뭐라고 하더군요. 돈 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차에 타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속도를 내는 순간 건너편에서 덤프트럭이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무섭게 돌진해왔다." (p153)
어떻게 보면 바이오산업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충분한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셀트리온의 성공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간간이 등장하는 생명공학 전문 용어와 내가 잘 알지 못하던 외국계 제약사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하기도 하고, 바이오 약품 제조 과정에 대한 일천한 지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분야에 대해 조금쯤 눈을 뜨기도 했다. <셀트리오니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꺾이지 않는 열정, 그리고 무한한 도전정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성탄절 휴일에서 시작된 3일간의 연휴도 이제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다. 며칠 남지 않은 2020년의 소중한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익는 독자들 누구나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한겨울의 차가운 시간 속으로 누군가의 뜨거운 열정이 쉼 없이 흘러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