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걷는사람 에세이 7
김봄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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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우울은 언제나 낮게 드리워진 잿빛 하늘과 희박해진 산소 농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도시가 빚어내는 성긴 우울의 그물망은 언뜻언뜻 기쁨을 가장한 가공의 웃음들이 섞이게 마련, 철없는 도시내기들은 그런 인위적인 웃음에도 마냥 들떠하곤 하는 것이다. 초겨울 햇살이 비쩍 마른 들고양이의 가벼운 발걸음처럼 사무실 한 귀퉁이를 살금살금 잠식하더니 급기야 책상 위로 올라와 제집인 양 훑고 지나갔다. 김봄 작가의 에세이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는 어쩌면 이런 나른한 오후에 딱이다 싶은 그런 책인지도 모른다. 읽다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슬그머니 코 평수가 넓어지면서 행복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애써 자위하게 된다.

 

"손 여사는 다혈질이고 매 순간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고집이 세지만 또, 남의 말을 잘 믿는다. 남의 말만 믿고 고집을 부릴 때는 대책이 없긴 하다. 손 여사는 자식이 많은 탓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을 테지만,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p.45~p.46)

 

작가가 펼쳐 놓은 이야기보따리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야기의 출발은 대개 4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자 진보 성향인, 그것도 보수적인 집안의 오 남매 중 셋째인 작가가 엄마인 '손 여사'와의 이념 분쟁에서 비롯되지만 사사건건 부딪히고, 다투면서도 끝내 화해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오히려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모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손 여사는 작가의 수학 담당이자 남동생의 담임이었던 선생님에게 당연하다는 듯 촌지를 주기도 하고, 출신 지역에 따라 정치적 편향이 정해진다고 확고하게 믿기도 하며,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신념으로 삼는 중산층으로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나 성 소수자를 향한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손 여사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내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지를 걱정한다.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꽤 오랫동안 나의 고양이들도 봐줬다. 어디 나가서 허풍선이가 될까 봐 언제나 확실한 것만 말하라고 뼈 아픈 조언도 해준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p.171)

 

우리는 대개 '다름'을 향해 다짜고짜 자신의 무딘 칼을 휘두르곤 한다. 습관처럼 말이다. 자기 주변에 다른 색깔의 풀이 자라는 걸 도무지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뿌리부터 싹둑 잘라버렸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돼야 말이지. 이쪽 편의 풀을 자르다 보면 저쪽 편의 풀이 무성해지고 나는 어느새 다른 색깔의 풀에 둘러 싸인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 이념과 가치가 다르다는 건 어쩌면 숲을 풍요롭게 하는 숲 속의 다양한 생명체처럼 우리들 생각의 숲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였는지도 모른다. 무딘 칼로 제거하려 애쓸 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살뜰히 보살펴야 하는 다정한 이웃인 셈이다.

 

"언젠가 손 여사는 그런 내가 무섭기도 했다고 말했었다. 얌체, 똑똑이, 잘난척쟁이, 손 여사가 나를 호칭하는 말들이다. 내가 언젠가는 눈꼬리 값을 꼭 할 거라고. 그 말은 '너를 믿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p.56)

 

작가는 자신의 엄마인 손 여사를 소개함에 있어 지독히 편향적이고 고지식한 보수주의자임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오히려 그 부분으로 인해 손 여사의 모든 행위가 용서(?)되는 일말의 애교쯤으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이 간직한 오래전 기억 속의 이야기와 사소한 일상의 대화들을 기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특별하지 않은 한 가정의 '정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글솜씨도 어쩌면 이와 같은 다양성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속의 우는 아이를 찾기 시작했고, 다독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잦아들 때 즈음,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건, 나를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멋진 도구였다. 나는 점점 내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고, 그 문제 안에 있던 보수적인 손 여사와 나의 관계도 직시하게 되었다. 쉽게 풀릴 수 없는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p.85)

 

“나는 보수 부모의 돈으로 자랐다. 그 돈으로 학원에 다녔고, 책을 사 읽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 딸들은 자신과 다른 이념의 부모를 결코 미워하지 못한다. 작가가 그 덕에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며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 자신의 현재는 부모님의 희생에 의한 결과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고양이든 우파 고양이든 대한민국의 부모님은 누구나 자식을 돌보듯 그 여린 생명체를 살뜰히 돌볼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들 부모의 성정이었음을 우리는 역시 잘 기억하고 있다. 초겨울 햇살이 아스라이 멀어져 가고 있다. 이제는 담을 수 없는 어린 마음 하나가 햇살을 따라 스러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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