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밥상
박중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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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Latte is...'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어렸을 때는 농약도 귀했고, 자연을 이용하는 기술력도 아주 미미했던 까닭에 자연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은 온통 유기농이었다. 말하자면 시절을 잘 타고 태어난 바람에 나는 본의 아니게 귀하게 자란 셈이 되었다. 먹을 게 없어서 이따금 굶거나 멀건 죽으로 끼니를 대신했던 걸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SNS에 자신이 먹었던 것, 자신이 여행한 곳, 자신이 입은 옷, 자신이 만난 사람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을 영상으로 올리는 시대가 되고 보니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단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목적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온라인상에 우리가 토해놓은 삶의 토사물과 같다. 냄새와 체감되는 느낌만 삭제한 삶의 토사물. 그러므로 넘쳐나는 그 많은 쓰레기에 대한 역겨움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포샵질을 하거나 사진에 찍히는 음식은 맛이 아닌 모양이 중요해지곤 한다. 마치 제상에 올려지는 웃기인 양.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극단적 기술 적용으로 당도가 높거나 부피가 큰 신품종 과일, 채소, 곡식들이 각광받는 동안, 몸피가 작거나 못생긴 토박이 동식물들은 대부분 농장에서 밀려났다. 과거 지구촌에는 오랜 세월 풍토 적응을 거듭하며 대를 이어 온 토착 동식물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했다. 이들이 개량종이나 신품종의 등장으로 대부분 멸종한 것은 건강과 관련한 인류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p.42)

 

바른건강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박중곤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종말의 밥상>을 통해 오늘날 우리 식탁의 풍요 이면에 숨겨진 혼돈과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설탕 덩어리가 된 과일, 생명 안테나가 부러진 동물들, 중성화된 물고기들, 박쥐나 곰 발바닥 등을 섭취하는 '몬도가네(혐오성 식품을 먹는 행위)' 등 저자의 눈에 비친 우리 시대의 보편화된 음식 문화는 온통 기이한 것 투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식습관이나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음식 문화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염성 질환과 비전염성 질환이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원래 자연계의 동물은 동물들끼리, 그리고 사람은 사람들끼리 따로 떨어져 살아왔으면 이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빈번해지는 과정에서 인간이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한 결과 자연의 반격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p.122)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은 비단 동식물에 그치지 않고 화학적 식품첨가제, 트랜스지방, 항생제, 농약, 염산, 환경호르몬 등 극독에 가까운 온갖 유해 식품들을 끊임없이 섭취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환경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화려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길들여진 우리는 거칠고, 투박하고, 야생에 가까운 떫고 신 음식은 멀리한다. 건강에 좋다는 건 알지만 우리는 이미 단맛의 유혹에 너무 깊이 중독된 까닭이다.

 

저자는 이런 '종말의 밥상'에 대한 대안으로 '신자연주의 밥상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최대한 의식주 생활에 자연적인 요소를 불러들여서 자연의 부재로 인한 불편과 아픔을 최소화 함은 물론 특히 식탁에 있어서는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함으로써 질병을 줄이고 건강한 생활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로컬 푸드 매장이나 직거래 매장 등 믿을 만한 식품 구입처를 통해 가급적 제철 음식을 섭취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대자연이 인간을 위해 참고 기다릴 시간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창조주가 번개로 바벨탑을 붕괴시키듯 심판하지 않더라도 대자연의 자정(自淨) 작용에 의해 일은 벌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인류의 큰 고민거리로 등장한 각종 전염성질환과 비전염성질환의 만연은 그런 가능성의 증거들로 보인다. 현대의 아담, 이브들은 제 꾀에 넘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 신세가 돼 가고 있다. 광관(光冠)의 바이러스는 그런 추락과 침몰의 사명을 띠고 인간 세계에 나타난 신의 사자인지도 모른다." (p.246)

 

오늘도 나는 생존의 목적이 아닌 순전히 맛에 이끌려 음식을 게걸스레 먹었고, 장맛비가 내리는 선선한 오후를 핑계로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었고, 몽롱한 정신으로 리뷰를 쓰고 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돌이킬 수 없는 삶의 토사물들이 각자의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오늘 점심으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대의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대가 토해놓은 삶의 토사물을 통해 낱낱이 보고 있다. '먹어서 죽는다'고 했던 법정 스님의 에세이가 불현듯 떠오르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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